1984년 한 해가 저무는 무렵 항상 바빴던 평소의 생활을 접어서 아내에게 맡기고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나시고, 살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마음의 고향「베들레헴」을 찾아 순례의 길을 다녀 왔다.
가는 곳 마다 많은 유적들이 내 마음을 사로 잡았지만, 부러움만 한아름 안고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 많은 것들 중, 지금도 나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 가는 거무스레한「까따꼼바의 흙」한 줌이 기념탑처럼 살아 있다.
이태리의 수도「로마」서 근교에는「까따꼼바」가 산재해있다.
2세기 중엽부터 5세기 초까지「로마」지역 가톨릭 신자들이 종교 박해를 피하여 지하에 굴을 파고 숨어서 신앙을 지켜가던 신앙의 보금자리요, 신자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버스를 타고 양쪽길가에 시원스레 늘어선 키다리 종려나무의 노란 열매와 그 위에 흰 구름 한점이 유리알 같은 실바람을 타고 많은 유적들을 뒤로 하면서 우리와 함께「까따꼼바」를 해야 달려간다.
겨울 날씨라고는 하지만 푸른들판에 이름 모를 잡초의 꽃들이 다투어 피는 풍경이 한국의 화창한 봄날 같다.
지금까지 지상의 성전을 보아왔지만 오늘은 깊은 땅속의 성전을 찾아가니 더욱 마음과 옷깃을 여미게 한다.
신앙의 선조들이 고통과 괴로움으로 살아가던 지하의 생활과 많은 무덤들을 머리에 그려보면서 나름대로 삶의 의미와 죽음을 다시 한번 묵상해 본다.
일행은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주의가 푸른 정원으로 가꾸어진 조그마한 건물안으로 들어서자 발밑에 급하게 드리워진 좁다란 돌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지하에 서올라오는 흙 내음을 맡으며 일행은 말을 잊었다.
빈 무덤이 크고 무거운 입을 열고 삶의 의미가 무엇이지 묻는다!
통로의 벽에는 퇴색된 벽화와 작고 큰 시채의 크기에 따라 네모지게 파놓은 거룩한 선조들의 빈 무덤이 층을 이루어 무덤의 아파트라고나 할까 그중 어린이의 작은 무덤들이 보는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아직도 썩다남은 뼈 조각은 지금도 부르짓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같다.
해가 바뀌고 세월은 흘러도 내앞에는「까따꼼바의 흙」이 살아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진리를 증거하는 자」가 되라고 양심과 정의와 사랑을 위해 살다가 하느님을 위해 죽어 달라고…
윤종철<선산군 선산읍 완전동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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