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兄! 통일로의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이곳 황금동산(내가 최근에 붙인 우리동네의 애명)에 부임한지도 이제 반년이 넘어서는 군요. 노오란 개나리가 만발한 이 황금동산에서 활짝 핀 젊음의 오기와 정열을 잃지 않으려 애쓰던 지난 날을 생각하니 오늘밤 새삼스레 당신께 할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최연소 본당신부라는 화려한(? )닉네임과 보좌신부에서의 획기적인(? )승진이라는 허울좋은 미명아래 마치 개선 장군이나 된것처럼 그넓고 확 트인 통일로를 앞뒤의 자동차 행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달려오던 그때를 생각하면 사실 兄과 의리를 끊지 않은 것만도 퍽 다행으로 생각하십시오. 글쎄 兄도 좀 바꾸어 놓고 생각을 해보시라구요.
그래도 전에는 처녀 총각 어울려 오손도손 재미있게 살았는데 잘난 兄때문에 그 숱한 애원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놔라』를 연발하며 청춘을 바치고 있는 나를 짝도 안채워서 보내어 생홀아비로 만들수가 있느냐 이말 입니다. (우리 본당에는 수녀들이 없음)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兄도 청춘으로 아깝게 요절하시긴 했지만 책에서 보니까 살아계셨을 때나 돌아가셨을 때나 맨 여자들 투성이더군요.
마리아 막달레나만 해도 그렇지요. 2천년이나 지났는데도 정신을 못차리고 계속해서「I don’t know how to love him」만 부르며 술집이나 방송국 가리지않고 싸돌아 다니지 않습니까? 심지어 얼마전에는-아는 사람은 알지만-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처녀들과 여대생、심지어는 여고생들까지 당신의 약칭인 J를 애타게 부르며 못잊는다는 등、사랑한다는 등 온통 난리를 피웠다구요.
바로 그때가 하필 내가 홀아비 신세(? )로 열통터지던 때라는걸 兄도 잘 아시겠죠? J兄! 뭐 이왕 말이 나온김에 맺힌건 풀도록 합시다. 책에서 보니까 兄은 그 방랑생활하는 와중에서도 돈주머니는 꼭 챙기게 하셨을 만큼 자신의 안보(? )에는 철저하셨던 것 같은데 당신이 나에게 생활비와 사목자금으로 선심쓰듯 내놓으신게 얼만지나 기억하고 계신지모르겠군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전에 있던 본당주일학교 교사들 짜장면값도 안되더군요. 뭐 이런 얘기 신자들이 알면 兄과 나만 치사해지니까 우리끼리만 아는걸로 해둡시다.
兄은 과거에 수차례 나에게 역설했었죠.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올바로이 끌어야 2백주년의 교회가 계속해서 살아날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兄은 나에게 젊은이 미사니 신앙대회니 하는 것을 해보라고 꼬드겨서 급기야는 교황님과 젊은이들 행사때까지 끌어내 혹사(?)시키지 않았습니까? 여하튼 그렇게 해서 일껀 젊은이들에게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의욕에 차있는 나를 젊은이라고는 가물에 콩나듯한 이 황금동산에 보낸건 또 무슨 고약하고 오묘한 심보입니까? 사실 兄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글을 쓸리도 없겠지요. 우리의 위대한 왕초이신 J兄이 세상표정이나 이런 졸개들의 시시콜콜한 사정이야 어디 아시겠어요? (독자들은 알겠지만 이건 아주 비꼬는 말투임) 兄은 세상 쓴맛 다 보신 분이고 세상만사 다 아시니까 우리가 兄한테 푸념을 늘어 놓을라치면 애들 취급하는 그 신비스런 웃음과 초연한 타이름에 어디 한번 이겨본 사람이 있을라구요. J兄! 한국말은 끝까지 다 들어봐야 안답니다. 이번호에는 이만 그려야 하겠군요. 兄이 나에게 어떻게 대한다 해도 兄에대한 나의 충성과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잘 아시겠지요. 다음호를 기대해 주십시오. 그럼、안녕히….
홍인식 <神父ㆍ금촌본당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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