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제가 되고나서 지금까지 4개의 본당을 거쳤다. 그 만남과 이별의 필연적 반복은 사제생활의 보람이기도하고 회한이기도 했다. 요새는 그렇지도 않지만 얼마전 까지만해도 신혼살림은 대개 몇번의 단칸방 생활을 거쳐 자기집을 마련하는 기쁨을 누렸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의 신혼살림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 오늘의 내집 마련(?)에 이른것 같다. 신혼의 첫보금자리는 옛 화장터의 명성과 지하철공사장의 소음과 먼지에 뒤덮힌 홍제동시장 바닥의 어느 조그만 골방이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이사 오던날 짐도 채 풀기전에 본당신부님을 따라 구역미사에 나가던 일,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서툴고 미숙하기만 했던 그 시절이 그래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짧은 기간동안에 많은 경험을 하게한 첫 출발이었기 때문이리라. 그 다음에 자리잡은 곳은 대방동 해군 본부옆의 이층집이었다. 비록 아직 셋방살이(?)에는 마찬가지였지만 좁으나마 제법 그럴듯한 응접실도 갖추고 넓은 정원과 지금쯤이면 만발하는 창밖의 백목련이 일품이었던 곳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보좌신부로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았고 또 하면 안되는 일이 없었던 꿈 같은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찬 젊은이 공동체 운동! 2년 3개월동안 나를 일에 미치게 했고 열정적인 삶에로 몰아넣었던 말이었다. 밤마다 이 구역, 저 구역을 누비며 삶에 찌든 젊은이들, 비판적인 눈으로만 교회를 보고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도 하느님을 멀리하는 젊은이들, 그들을 만나 어려운 말문을 열게하고 대화를 시작하여 끝내는 고백성사의 사죄경을 외어주고 서로 기쁨과 화해의 악수를 나눌 때의 그 짜릿함이란 직접 대어를 낚아보지 못한 사람 낚는 낚시꾼이 아니면 감도 잡지 못하리라. 하여간 2층방 셋방살이 시절은 정말 행복하고 보람 가득한 나날들이었다.
2백주년과 교황방한의 열기와 흥분속에 새번째로 이사한 곳은 강남의 아파트촌이었다. 내방은 행랑채 비슷한 곳이었는데 거기서 바라본 창밖의 모습은 우뚝우뚝 솟은 아파트의 밀림 속에 온통 빌딩과 콘크리트 바닥 뿐이었다. 동네 색깔, 옷 색깔, 얼굴 색깔이 모두 다르게 느껴졌던 그곳에서 나는 신자들의 마음 색깔에 막 정 붙이려했을때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망의 단독주택 입주권과 함께…마치 아파트 값이 한창 치솟으려 할 때 어쩔수 없는 사정에 의해 아파트를 헐값에 팔아 넘겨야하는 사람의 허망한 심정이라 할까.
하여튼 이렇게 해서 나는 짧은 기간동안에 별고생없이 공기좋고 인심좋은 시골의 별장과 같은 단독주택을 확보할 수 있는 행운아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요즈음에 와서야 어느 소녀가 언젠가 떠나는 나에게준 시귀중에서 이별도 간절한 기도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사실 떠나고 나서야 나의 참모습이 보여지고 나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의 사랑과 진실이 새삼 깊게 느껴짐을 간절히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짧으면서도 길었던 사제생활의 추억속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려 본다.
그때 그 시절의 미숙함과 부족함이 떠올라 지금이라도 달려가 용서를 청하고 싶은 얼굴들, 인간적인 결점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사제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 주었던 감사하고 싶은 얼굴들, 많이 사랑해 주지못해 미안한데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과 기도를 보내는 얼굴들…그래서 나는 오늘도 통일로를 달리며 노래를 부르는 즐거움을 버리지 못한다『모두가 사-랑-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요 사랑해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모두가 사랑이에요』
횽인식 ③<神父ㆍ금촌본당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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