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곤(春困)인가 보다. 대청의 양지바른 창가에 앉은 것이 고양이처럼 깜박 오수(午睡)에 들고 말았다. 그런데 꿈치고는 참 희한한 꿈을 꾸었다. 꿈에 사위보듯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윤지충(尹持忠)어른과 해후를 한 것이다.
하도 반가와서 홀짝홀짝 뛰고 싶었지만 채신머리 없는 것 같아서 꾹 참았다. 필자가 그 어른께 특별한 온정을 가진 것은 한국의 첫순교자요 이고장(호남)의 순교자라는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리의 골자를 요령있게규명
그분은 수대에 걸쳐 한다하는 양반의 신분으로, 유교의 성직자인 처지에 체면 불구하고 전통의례인 유교식 조상제사와 신주(神主)를 폐지한 결단력과 주관이 놀라왔다.
또한 1791년 전주에서 치명할 때까지 법정에서 보여준 신앙고백의 내용에 감격한 것이다. 더구나 그분의 법정 공술기(供述記)는 50여년후에 내종질(內從姪)인 정하상의 상재상서(上宰相書)의 대본격이 되었다고 확신을 갖게되어 흠모의 정에 무릎을 끊고 말았다. 공술기는 천주교 진리의 골자를 요령있게 규명한 내용이었다.
그뿐이던가, 그 당시 신도들은 그분의 거룩한 순교과정과 기적을 나타냈던 물적증거품을 조선교회를 관리하던 북경주교에게 즉시 보고하였고「로마」에까지 알려진 사실이있었다. 그분은 초대 교회의 공동체에서 성인으로 공경받았다.
그런데 그 가계(家系)와 역사는 홍수를 치룬 밭처럼 인간의 망각속에 매몰되고 말았다. 윤지충의 족적(足跡)을 찾아 2년을 헤매면서 해남(海南)의 고산 윤선도서원에서 족보를 만났고 거기서 지충의 조부모, 부모, 숙부모가 묻힌 유택(幽宅)의 소재를 알았을 때의 기쁨은 피로를 잊게 하였다. 그분이 자신에서 전주까지 압송된 형로(刑路)를 발굴하며 1백 20리 옛길을 몇번인가 걸었지만 힘든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의 고향과 무덤의 소재를 찾아 보았으나 산천은 침목만 지키었다. 그러던중 이제 5년전의 일이지만 불행한 변을 당하여 사경을 겪고 말았다.
◆回生한 것은 남은 일때문
내가 기적처럼 회생(回生)한 것은 남은 숙제 때문이었다. 그걸 마치게 하시려고 하느님은 유예(猶豫)를 하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늘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지만 5년을 이꼴로 한심하게 있었으니 면목이 없었다. 그분과의 해후는 생시에 못뵌 님을 꿈에나 뵐까하여 님가신 푸른고개를 넘는 마음이 등성이 쯤에서 만난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내 생각과는 달리 엉뚱하였다. 네가 내 족적을 찾으려고 애닯고 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나는 이땅에 나의 기념비를 세우려고 살아온 일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분이 나에게 산조(散調)로 들려준 이야기는 이런 뜻이었다. 요새 싱거운 소리로 못마땅한 이를 두고 지옥으로나 가거라하는 우스개가 있지만 천당에 와서보니 그렇지를 않다는 것이다. 지옥은 하느님이 버린 곳이 아니라 인간의 악행이 선택한 곳이라고 한다. 내가 천당에 온 것은 내 행실이 뾰족하게 선해서라기 보다는 나의 애절한 선택을 하느님이 허락하여 주셨다는 것이다.
◆文化는 하느님 발견의표징
내가 천주교를 알았지만 믿음을 선택하는 결단을 내리기까지 2년이 걸렸지만 그에 앞서 선인(先人)들은 2세기에 걸쳐 학문을 연구하며 하느님을 더듬어 찾고 있었느니라. 학문의 진지한 연구에서 확신된 믿음이 뿌리를 뻗지않았다 면 과연 죽음의 지뢰발을 뛰어들었겠느냐. 성녀 소화 데레사는『내가 믿고자 하는 바를 나는 노래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냐. 문화는 하느님을 발견하게 하는 표징이다. 나 역시 유교문화를 몰랐다면 천주교를 쉽게 외면하면 미신에 빠지느니라 또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천당밖에 모르는 무식한 집단이 되면 한심한 노릇이 아니냐. 지적(知的) 노력은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려는 까치발이니라. 또 너희들이 자선(慈善)과 사회운동 혁명적인 일들을 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은 너희들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니라.
◆신심운동조차 직수입하다니
머리는 조두(鳥頭)인데 사지만 장승같고, 머리는 장구통만한데 사지는 오징어같다면 어찌 꼴불견이 아니겠느냐. 근래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봉사에는 강조되고 있지만 문화에 더 힘써야겠기에 달리는 말에 채찍하는 것이렸다. 지금은 지구촌인 세상에서 진리의 보편상이 실감나지만 진리의 이해와 표현은 자기것이어야 하느니라. 요새 한국의 젊은 지성인들이 한국적인 것을 찾고 한국 전통종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있는데 아마 현대판 실학운동인성 싶다. 게다가 민족주체성을 가조하지 않느냐. 내가 유교문화의 제사의례를 치부한 근거는 문화란 언제나 변할수있다는 가변성(可變性)을 깨달은 것이었다. 내가 주작학에 신물낸 것은 일방적인 맹종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와 형식주의에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들을 귀가 있으며 새겨듣거라. 이제2백년의 역사에 백세분의 성인을 모셨으니 외래종교라고 할 사람은 없겠구나. 그렇다면 직수입(直輸入)식 신심운동이나 신앙교육은 줏대없는 일이렸다. 닭똥 깔기듯 내뱉는 외국말들은 문화식민지나 할 짓이고, 이제 그만일어나 세수하거라. 언제 사래 긴 밭을 갈려느냐.
이런 꿈이 남가일몽일까. 돼지꿈이나 용꿈보다 뒷맛이 개운한걸보면 좋은 꿈인가 보다.
김진소<神父ㆍ안드레아><호남교회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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