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한국인은 정치의 세계에 대하여 상반되는 두가지 태도를 함께 지니고 있는 듯하다. 즉、한편으로는 정치란 더러운 것、권모술수가 난무하고 비리가 판을 치는 세계、그때문에 아예 그 동네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관심은 금물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편에는 정치란 최상의 것、우리가 추구하는 온갖 것을 멋지게 성위시켜줄 수 있는 요술상자와 같은 것이라는 무한한 기대와 선망이 같은 마음속에 깊숙이 비집고 들어가 앉아있다. 이러한 雨向적인 심리적반응은 정치의 세계에서 움직이는 정치인들에 대하여도 비슷하게 표출된다.
◆정치계는 우리와 별세계
정치라는 세계가 인간의 삶속에서 워낙 주요한 영역이기때문에 어느나라 사람들이나 그에 대해 얼마간 복합적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특히 우리의 경우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그때문에 정치는 동시에 愛와 憎의 대상이 되고 천국과 지옥을 다같이 표상한다. 선거가 끝나면 으례 동창회마다 동문출신 국회의원 당선자를 축하하는 모임을 마련하기 바쁘다. 당사자들은 정치적 장도를 축복받고 하객들의 선망의 눈빛도 그들의 금뱃지에 머무른다. 그런가하면 교수출신 정치인이 정치를 그만두고 다시 학계로 돌아오려는 경우、옛동료들 마저 그의 복귀를 탐탁치않게 생각하고 고개를 휘휘 젓기가 일쑤이다.
그가 정치학 교수출신인 경우도 별로 다를바 없다. 교단에 서기에는 그가 여지껏 헤엄치던 물이 너무 혼탁하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정치의 세계는 적어도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영역과는 크게 구별되는「별세계」라는 생각이 우리의 뇌리를 크게 지배하고 있다. 그곳은 별세계이기 때문에 발을 내디디기도 쉽지 않지만、훨훨 털고 다시 그곳을 빠져 나오기도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그곳은 마치 깊은 수렁같아서 그 場에 한번 진입한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곳에 머무르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때문에 또 적지않은 무리가 뒤따르게 된다.
◆정치의「막강한 힘」
이처럼 정치의 세계가 일상의 생활영역과 분리되고 그에 대해 양극적인 태도가 엇갈리는 것은 무엇보다 이 세계가 갖고있는 막강한「힘」때문이 아닌가 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를 되돌아 볼때 정치권력을 장악한 자는 無所不爲、無所不能의 지위를 누려왔다. 카리스마가 온통 정치일원에 집중되어 그 거센 힘이 경제 사회 문화 등 온갖 생활영역에 깊숙이 미쳤고 이를 매개로 하지않고는 어떤 일도 그리 쉽지 않았다. 그때문에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그런대로 성공한 자들도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 끝내는 모든 힘의 원천인 정치권력의 세계로의 접근을 꾀하곤한다.
따라서 영화배우도 실업가도 심지어는 교육자까지도 얼마간 聲價가 높아지면 생애의 마지막 결전장으로 정치의 세계를 넘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의「場」은 많은 이들에게 있어 모든 길이 그곳으로 통하는「로마」를 의미한 셈이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리에 있어 정치의 세계는 일상의 세계와 분리되는 별세계의 차원을 넘어 오히려 일상생활의 위에서 군림하는 초월적 세계를 의미한 것이다. 이처럼 정치의 영역은 그것이 지닌 헤라클레스의 위력때문에 만인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하나、반면 그 막강한 힘의 그늘 속에서 빚어지는 부정과 부패、비리와 암투는 힘없는 백성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끝내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한다.
◆「지방자치제」실시 바람직
여기서 정치의 세계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겠느냔 식으로 얼버무리자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낼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 우리처럼 극을 달리지 않고、또 정치영역이 일상적 삶의 영역에 보다 자연스레 근접되어 있음을 볼때 우리의 경우 이 문제를 적당히 호도해 버리기에는 상황이 만만치 않다. 거듭 말하거니와 문제의 핵심은 역시 정치일원에 힘과 영향력、온갖 가치와 자원의배분능력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데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모두가 정치라는 길목에 목을 매게되고 또 한번 권력을 거머쥐면、그 마력에 취해 좀처럼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딜레마에서 헤어나 정치를 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가까이 끌어들이기 위하여는 정치권력의 양과 질을 크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우선 가능한대로 정치에、그것도 중앙과 정상정치에 집중된 권력을 양적으로 축소、분산시키는 반면 국민들의 정치참여의 기회를 확대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권력세계에 대한 엘리트들의 치열한 관심은 줄어들고、반면 국민들은 보다 정치에 친근감을 갖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논의되는 지방자치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그뜻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쉽게 성사되기 위하여는、적어도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기존 정치엘리트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데 문제의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다음、권력의 내용과 연관하여 생각해야할 것은 민주적 경기규칙 대신에、강제력만을 앞세우는「벌거벗은」권력을 정치의 자에서 배제하고、보다 정당한 정치권력을 키우는 일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국민들은 정치적 정당성을 갖춘 정치권력에 대하여는 쉽게、또 자발적으로 승복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권력이란 바로 국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벌거벗은」권력은 정치과정 속에서 국민들에게 소외감만을 심어주나、올바른 권력은 오히려 이들에게 체제에 대한 일체감을 높여준다. 따라서 권력의 정당성이 국민들에게 두루 인정되는 마당에서는 굳이 정치세계가 이들에게 별세계로 인식될 이유가 없다. 이때 정치세계와 일상의 세계가 서로 포옹해 버렸기 때문이다. 또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雨向적인 심리적 반응도 사라진다. 정치가「영웅」도「악한」도 아닌 보통「사람」의 모습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생활과신앙 분리될수있나
글쓴이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일상생활과 종교생활을 서로 분래해서 별다른 연관없이 영위하는 경향이 있다. 하느님을 잊고 나날을 살다가 주일날 불현듯 성당을 찾고、성당문을 나서는 길로 다시 일상의 늪속에 빠진다. 잠시 별세계를 찾아 마음의 안정을 찾았을뿐、하느님께 무릎꿇는 마음이 나머지의 삶을 지배하는 내면적 가치로 승화되지 못한다. 그러기에 세속적인 온갖 탐욕과 질시、거짓과 허세가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계속 맴돌고 이를 革破할 수 있는 힘과 의지를 키우지 못한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기도가 우리의 일상생활속에 보다 넓게 그리고 깊게 스며들때、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때에 교회는 별세계의 영역을 떠나 우리의 일상과 뜨거운 포옹을 하게될 것이다. 마치 참된 민주주의 속에서 정치생활과 일상생활이 자연스레 일체가 될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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