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북한주민들은 개신교나 천주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평양 인근에 성당이나 교회가 세워지고 신자가 있다는 것은 남한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평양에 존재하는 성당은 정권이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 낸 박물관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세상 사람들에게 북한도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준다는 것을 형식적으로나마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천주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9년 임수경이 청년학생축전 남한대학생 대표로 왔을 때 함께 계셨던 신부님을 통해서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판문점을 넘는 임수경 옆에 듬직한 모습으로 서 계시던 문규현 신부님이다. 당시 북한TV에 등장한 문 신부님을 보고 사람들은 “임수경을 무사히 한국까지 모실 임무를 수행하시는 분”이라고 했고, “신부님이 태권도에 능해 혼자서도 수십 명을 상대해도 단번에 쓰러뜨릴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탈북자들의 문 신부님에 대한 인식은 남한에 정착하여 신앙을 알게 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바뀔 수 있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국정원과 하나원 교육과정을 거친다. 매주 일요일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에서 신부님들과 목사님, 스님들이 우리를 찾는다. 주말에는 특별한 교육이 없는 날이라, 교육생들은 저마다 본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그런데 교회에 갔다 온 날이면 탈북자숙소에는 근거 없는 말다툼이 벌어진다. 내용인 즉 세상에는 하느님과, 하나님이 있는데, 하느님은 천주교이고, 하나님은 개신교이다. 그 중에서 ‘하느님’이 진짜라는 둥, ‘하나님’이 역사가 더 깊다는 둥, 저마다 이해한대로 어이없는 언쟁이 한동안 벌어진다. 아직 신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없다보니 누구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신부님의 모습이다.
북한에서 알고 있었던 신부님은 보기에도 엄한 모습으로 상대를 제압하시는 무서운 분인데, 우리를 만나러 오신 신부님은 인상도 인자하시고, 몸도 좋으시고, 말투도 친근하다. 모든 것을 미루어보아 여기에 오신 신부님은 우리를 교양하기 위해 들어오신 혹시 ‘가짜 신부가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하였다. 거기에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만 옷을 입으신 수녀님은 더욱 낯설고 생소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우리의 두려운 마음을 단번에 깨뜨린 것은 신부님과 수녀님이 불러주셨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였다.
같은 호실에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진심을 터놓지 못하고, 이곳으로 오기까지 수많은 고난을 견디면서 웃음도, 정(情)도 사라져버린 우리들이다. 서로의 마음을 열기에는 쌓여있는 마음속 고충이 너무 무거워, 언제 한 번 우리 자신에 대해 돌이켜 볼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 탈북자 각자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깊이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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