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의 70%는 여성들이다. 이 여성들 가운데 대부분은 북한에서 직행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배고픔을 참지 못해 중국으로 팔려 간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러나 중국도 탈북여성들에게 안전한 곳은 아니다. 북한정권의 요청 때문에 중국경찰이 수시로 탈북자들을 적발해 북한으로 강제 추방한다. 그러다 보니 동북삼성에 살고 있는 탈북여성들은 신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남한행을 택한다.
한국에 도착한 탈북여성들은 하나원에서 처음으로 종교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교회나 성당에 다니기는 역부족이다. 고향에 남겨진 가족을 하루빨리 남한에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한동안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본인이 원하는 교회나 성당으로 향한다. 나도 하나원에서 천주교를 접했지만,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기까지는 거의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했다. 그 사이 북한에 있는 아들은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고, 지금은 ‘바오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15일 나는 인근 본당에서 아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날 하얀 미사보를 머리에 얹고,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수십 번도 넘게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였다. “예수님, 제가 왔습니다. 진작 오고 싶었지만, 지금에야 이렇게 아들과 함께 세례를 받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저의 행동을 한 번도 꾸짖지 않으시고, 저의 아들을 이곳으로 무사히 인도하셨습니다.”
세례식 다음 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광화문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를 거행하셨다. 교황님이 광화문에 오시는 날 나 역시 새벽 5시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지하철은 새벽부터 들뜬 분위기로 웅성거렸고, 차 안이 터지게 모인 신자들은 첫 만남에도 서로서로 ‘자매님’이라고 부르며 반가워했고 자리를 양보해줬다.
환호하는 군중에게 답례를 보내시던 교황님이 몸소 차에서 내리시어 어린 아기의 머리에 손을 얹을 때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교황님의 시복미사 중 내 마음을 꽉 채운 것은 ‘사랑과 용서’다. 교황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북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기도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교황님, 북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교황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닿게 해주세요.”
당시 무더운 햇볕에도 교황님의 시복미사를 가슴 깊이 새기면서 환호를 보내던 수백 만 신자들의 함성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날 우리 탈북자들이 앉은 자리는 교황님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에 마련됐다. 주위 많은 사람들이 의자도 없이 비좁은 바닥에 앉은 모습을 보면서 감사함과 송구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탈북자들이 교황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뵐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주신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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