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살면서 자원봉사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정권이 조직하는 정치행사와 노력동원에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했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그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한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왔다. 그랬던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정착하면서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은 자원봉사자다. 처음에는 정부의 돈을 받고 탈북자들을 도와주는 사람들로만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진심으로 우리를 마중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셨던 천사 같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처음 자원봉사를 체험한 것은 지난 ‘어버이날’ 행사다. 실제로 자원봉사에 참여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힘들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복지관에는 많은 어르신과 자원봉사자들로 벅적였다. 어르신들을 축하하는 공연이 끝나고 마당 한가운데서 점심식사가 시작됐다. 뜨거운 밥을 공기에 정성스럽게 퍼 담는 사람들, 음식쟁반을 부지런히 나르는 봉사자들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낯을 찡그리지 않고 밝은 미소로 어르신들을 대했다. 그런데 떡 그릇을 받아 드신 할머니가 내 손목을 꼭 잡더니 “날씨도 더운데 힘들지 않느냐, 우릴 위하는 마음이 참 예쁘다”고 말씀하셨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아, 남을 위해 바치는 자그마한 행복이란 바로 이런 순간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껴보는 계기가 된 셈이다.
북한주민들은 남한과 마찬가지로 정도 많고 이웃의 아픔을 자기 일로 여기며 살아왔던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20년 넘게 지속된 열약한 생활환경은 북한주민들의 인정과 사랑을 앗아갔다. 그들은 지금도 “내 것을 양보하면 우리 가족이 죽을 수 있다”는 압박감에 허덕이며 힘들게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처음으로 접해보는 남한사람들의 자원봉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감동과 행복도 느낄 수 없었다. 우리 자신이 집적 체험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자원봉사 활동 속에 스며있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인간의 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현재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중에는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낯설고 두려움만 가득했던 우리에게 스스럼없이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주던 고마운 분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은 아름다운 마음의 표시다.
나는 작년부터 주말만 되면 지인들과 함께 새터민 쉼터를 비롯한 여러 곳으로 자원봉사를 떠난다. 휴일 새벽부터 먼 곳으로 떠날 준비에 바쁘지만, 마음은 즐겁다. 언젠가 어린 아들이 주말이면 혼자 집에 남게 되는 게 서운했던지 나에게 “꼭 가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런 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 엄마가 살면서 가장 기다리는 날은 자원봉사 가는 날이야, 피곤하지만 엄마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해.”
이렇게 우리는 자원봉사를 통해 이 땅에 새로운 천사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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