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은 어차피 우리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취재 현장에서 만난 청소년의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목소리에는 한숨이 묻어났다. 답답함을 넘어 불신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의아한 마음에 이유를 묻자 대답인즉슨,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면서 결국에는 자기 뜻을 강요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청소년사목 현장에서 소통이 원활치 않은 일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청소년의 말이 놀라웠던 것은 소통이 안 된다는 본당사제가 누구보다도 소통을 강조하던 사제라는 사실이었다.
청소년에 대한 관심도 있다. 투자도 많이 한다. 그런데 청소년사목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은 모두 어른의 몫이다. 주는 것을 받기만 하는 청소년은 언제나 철저한 을의 입장에 서있다. 아무리 ‘소통’을 외쳐도 어디까지나 갑의 입장에서 갑이 생각하는 ‘갑의 소통’에 그친다면 을은 불통을 느끼게 된다.
지난달 수원교구가 발족한 ‘가톨릭청소년차세대위원회’는 이런 불통을 없애기 위한 희망적인 도전이다. 교구 청소년·청년 대표로 구성된 위원회는 교구 청소년사목에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면서 사목정책을 제언한다. 아직 시작 단계로 앞으로 얼마나 소통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진행돼 봐야 알 일이다. 다만 어리고 부족해서 채워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자세는 더 이상 ‘갑의 소통’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스도는 철저하게 을로서 소통했다. 하느님이셨지만 자신을 비워 사람의 모습을 취했고, 제자들과 병자와 죄인에게 오라고 하기보다 직접 찾아갔으며, 마침내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췄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우리는 과연 끝없이 스스로 낮추는 ‘을의 소통’을 하고 있을까. 혹시 ‘갑의 소통’으로 불통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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