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력 실세들에게 검은 돈을 뿌린 메모를 남기고 자살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온 나라가 충격과 불신의 늪에 빠져있다. 한국은 지난 8년간 자살률이 세계 1위인 나라이다. 일단 장벽에 부딪히면 극복하려는 노력보다 자살로 마감하려는 충동이 온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가치관이 혼란한 사회는 불안할 수밖에 없고 절망을 죽음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 사회는 정작 죽음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노화나 죽음이란 주제는 되도록이면 은폐되거나 기피될 수밖에 없다. 죽음이라는 철저히 개인적인 이 문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과 공포를 우리에게 안겨준다. 죽음이 가져다주는 극도의 공포 앞에서 사람들은 가능하면 죽음을 잊고 싶어 하고 죽음이란 주제는 되도록이면 일상의 대화에서는 떠올리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서로 솔직하게 논의해 볼 수 있는 기회조차도 실종되어 버렸다. 자살이 폭증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는 역설적인 증표이지만 왜 자살이 폭증하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논의는 미미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죽음에 관한 전문가들이라 할 수 있는 종교인들이 이 문제를 방기하는 건 직무태만이다.
1960년대부터 서구에서는 우리 삶의 주변에서 죽음을 소거시키는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간파하고 죽음 각성(death awareness)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여기서 발생된 것이 죽음학(Thanatology)이다. 현재 서구 각국은 청소년들에게 중고교 교과과정에서 죽음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웃 일본도 2002년부터 학교의 공식 교육과정에 죽음교육을 채택하고 있다.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습성 때문에 죽음이란 주제는 외면당하지만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면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비로소 겸손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죽음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인간을 성스러움으로 이끄는 변용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참된 생명에 대한 자성적 질문은 회개와 도덕적 완성을 희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퀴블러 로스는 “죽음은 마지막 성장”이라고 표현했다.
삶에만 품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도 품격이 있다. 인간이란 어떻게 사느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 하는 문제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삶이 존엄하다면 죽음의 존엄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임종에 직면한 환자의 태도는 그가 어떤 태도로 살아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좋은 죽음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 임종자들을 보살피는 호스피스 간호사들의 체험담에 따르면 “임종자들은 자기가 살아왔던 모습대로 죽어간다”고 술회하고 있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의 죽음은 용기 있고 고요하고 평화롭다. 가톨릭교회는 좋은 죽음을 ‘선종’이라 표현해왔다. 그러나 밝고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호스피스 운동이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에 의해 가장 초창기(1963년)에 도입된 나라이며 천주교는 산하 주요병원에 호스피스 병동을 설치하여 호스피스 운동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호스피스 병동은 제한되어 있고 갑자기 닥친 사고사 같은 경우엔 손 쓸 겨를이 없으며 무엇보다 좋은 죽음은 평소에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 죽음학 연구의 활성화는 이 땅에 생명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가톨릭교회의 생명 운동과 교리교육 특히 청소년을 위한 주일학교 교육에 연계되어야 할 것이다. 죽음교육이야말로 현실의 삶을 더 존중하고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역설적으로 생명교육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백색이 흑색과 대비될 때에 더 뚜렷하게 드러나듯 죽음연구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어 보다 더 성숙한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이젠 ‘잘 먹고 잘 살자’(well-being) 뿐만 아니라 ‘잘 죽자’(well-dying)도 덧붙일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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