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 오는 날이 반갑지 않다. 우산을 써도 덮쳐오는 빗줄기에 옷이 젖고 신발에 물이 고이고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우산을 이리저리 받쳐 들고 가는 수고로움도 보통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불평과 짜증이 생기는 것이 문제다. 생각해보니 나는 우산을 쓰지 않은 채 비를 맞아본 적이 없다.
내게는 이와 같은 일들이 너무도 많다. 그 흔한 풀밭에 두 팔을 베고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 적도 없다. 드러눕기는커녕 덥석 앉아본 적도 없다. 종이를 깔고 어떻게 하면 옷에 흙이 묻지 않을까 걱정한다. 눈을 맞는 그 낭만적인 일도 하지 않았다. 첫눈을 기다려 그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해본 적도 없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창밖으로 바라보기만 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 자신을 항상 무엇인가로 싸매고 있었던 듯싶다. 나를 한 번도 그 무엇에 던져본 적이 없는 듯하다. 무엇인가 노심초사하고 걱정하고 조심스러워하고 한 번도 나를 놓아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나는 내 앞에 놓인 길만 따라갔다. 저 멀리 어떤 길이 있는지 보려고도 하지 않은 듯하다. 머리에 삶을 얹고 두 손은 옆에 딱 붙인 채 앞만 보고 걸어온 것이다.
삶은 나를 풀어헤쳐 땅과 사람과 하늘과 한바탕 씨름을 하며 흙 범벅이 되어보는 것이 아닐까? 머리와 가슴과 손과 발이 함께하여 나를 상황에 투신하는 것일 것이다. 잘 정리 정돈된 집안의 먼지 하나 없는 거실이 아니라 발자국도 있고, 땀 냄새 밴 옷가지도 널브러져 있고, 어젯밤 톡탁이던 목소리도 남아 있는 곳이 삶인 것이다.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삶은 많은 삶의 본질을 잘라내고 있다. 때로는 불편함이 있고, 상처가 되고,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으나 될 수 있으면 삶의 본질에 몰입하고 끊임없이 해답을 찾아가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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