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식사 자리에서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한탄했다. 본당 단체의 장을 맡고 난 뒤부터 “너무 바쁘다”며 일상적 일을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식사도 제대로 마치지 않은 그 지인은 다른 회원과 만난 뒤 나를 다시 보기로 했다. 얼마 뒤 그는 계획에 없던 회의가 생겼다며 나와의 약속시간을 변경했다.
이날 그 지인은 하루 일정을 꽉 채워 소화했다. 그는 바빴다. 그러나 그가 바빴던 이유는 자신이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데 따른 결과였다. 일상적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행동이 ‘일상적 일을 하지 않기’였을 뿐이었다.
우리는 매일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선다. 이 선택 앞에서 너무나 자주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나의 지인들과 직장인들을 살펴보면, 자신들이 바라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을 만큼 바쁘지는 않다. “바빠요”는 어느새 그냥 하는 말이자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일에 대한 합법적인 변명이 돼버렸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쌓아두고는 책임감에 짓눌리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사실 무책임한 태도다.
물론 정말로 바쁜 사람들이 있다. 생계유지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한다면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메일, 문자 메시지 등 온갖 알림에 솔깃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누군가 그들을 꼭 필요로 하는 것처럼, 그가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셈이다.
“바빠요”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모든 일을 ‘선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정말 중요한 일인지, 단순한 습관인지를 생각한 다음 용감하게 ‘결정’해야 한다. 아울러 “바빠요”라며 자랑하기를 멈춰야 한다.
신앙도 선택의 문제다. “바빠요”로부터 탈출해야 신앙을 선택할 수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