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서울 명동 ○○백화점을 향해 걸어가는데, 휑한 바람이 불고 가슴이 먹먹해왔다. 속으로 비통한 절규가 올라왔다. 지천의 나무들은 초록물감을 뿌려놓은 듯 이리도 싱그러운데, 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리도 요동치는가?
언니들이 왔다. 백화점 안으로 휩쓸려가며 생경한 풍경 속에서 이방인이 된 듯하다. 삶의 부조리 앞에서 비틀거리고 걸어가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산다는 것인가? 이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인가?
순간 나도 의식하지 못하던 원초적 본능이 내 속에서 꿈틀댄 듯하다. 널려진 물건 사이로 눈이 빛났고, 손놀림이 빨라지고,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원하는 물건을 잡고자 몸을 던지고 있지 않는가? 이것이 삶이구나. 표리부동한 것이 삶일 수 있고, 그것이 ‘나’이구나.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볐다. 혼란스러웠다. 한계와 모순투성이의 ‘나’는 어느 길로 가란 말인가? 누구 하나 이 길로 가라고 가르쳐주지 않은 채 가고 있었고, 누구 하나 같이 가자고 손 내밀지 않았다. 놓여 있는 길을 혼자 엉금엉금 기듯 찾아가야 하고, 같이 가자고 발을 구르며 소리 질러 불러야 하고….
올려다본 밤하늘에 별 하나 빛나고 있다. 이 검고 좁은 마음속에 우주가 내려앉는다. 바늘구멍 같은 작은 마음의 틈새로 큰 사랑이 가느다란 실이 되어 빛나며 잡으라 하신다. 희망의 빛이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이라곤 조금이라도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 속에서 계시더라도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쾰른, 군사용으로 건설된 지하 동굴 속에 새겨져 있는 글을 되새기며 밤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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