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참 아름다운 말이다. 숭고함 마저 배어 나오는 듯 참 좋은 말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화해를 말하거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화해를 권유할 때에는 참 아름답고 좋은 말로 느껴진다. 그런데 화해는 때론 우리를 참 당혹스럽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막상 내가 화해를 말해야 하고 화해를 청해야 할 때, 또 누군가가 나에게 화해를 말하고, 화해를 청할 때는 ‘화해’라는 말이 우리를 적잖이 당혹스럽게 만든다. 아마도 화해란 ‘싸움하던 것을 멈추고 서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애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싶다.
막상 누군가와 화해하려 할 때, 화해를 해야만 할 때, 우리는 ‘안 좋은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무엇보다도 ‘왜 풀어야 하나’를 스스로에게 물으며 선뜻 화해의 손을 내밀기를 망설인다. 더욱이 어렵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는데 상대방이 흔쾌히 호응해 주지 않으면 당혹해 하며 분개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가 나에게 예기치 않은 화해의 손을 내밀 때 선뜻 호응하기보다는 순간 당황하여 망설이거나, 또는 짐짓 놀라는 척하며 화해를 청하는 사람의 속내를 궁금해한다. 내가 화해의 손을 내밀 때, 내게 누군가가 화해의 손을 내밀었을 때 우리가 당혹스러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명분과 체면을 의식하기 때문인 것 같다.
화해는 일치를 위해 꼭 선행되어야 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남북한의 일치나 남북한 사람들의 하나 됨이 그러하다. 화해 없이 일치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물리적인 통합에 불과하다. 한반도 통일은 남북 사람들의 마음이 일치하여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런데 오랜 세월 동안 남북 화해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남북 화해를 바라면서도 명분과 체면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너무나 화가 나서 용서나 화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분노 자체가 나 자신을 매우 힘들게 했고, 그 사람과 얽힌 일이 빨리 정리되어 아예 나의 기억에서 지워지기를 바랐었다. 물론 기도도 드렸다. 내 입장을, 내 억울함과 분함을 절절히 하소연하며 주님께 다 맡겨 드린다고 기도드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께서 응답해 주셨다. 꿈속에서였다. 꿈에 못내 그리운 돌아가신 어머니가 오셨는데, 나를 분노하게 한 그 사람을 꼭 안아주시고는 나를 보시며 빙긋이 미소 지으시는 게 아닌가. 꿈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정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했고,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녹아내렸다.
남북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은 명분이나 체면을 따지지 않고, 어느 한 쪽이 먼저 다른 한 쪽을 꼭 안아주는 걸로 시작해 보는 게 어떨까?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는 우리 쪽이, 우리 쪽에서도 주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 사는 우리 교우들이 먼저 시작해 보는 게 참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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