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이 시작되자 오르간 반주가 울려 퍼집니다. 지난봄 반주를 담당하시던 수녀님께서 꽃동네로 이동하시고 난 뒤, 한동안 반주 없는 예절을 봉헌하면서 팥소 빠진 찐빵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럴 때 악기를 다룰 줄 모르는 자신이 부끄럽고 후회스럽긴 다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이곳 전라북도 정읍시 전주교구 시기동본당 소속 등천공소는 신자 20여 명이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산골 오지로 은퇴수녀님 세 분이 신자들을 돌보시며 생활하십니다. 공소신자들에게는 엄청난 은총의 혜택이죠.
그런데 오늘 오르간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조 수녀님께서 반주를 하시는 거예요. 삼 년 전엔 금경축을, 내일 모래면 산수(傘壽)를 맞으시는 수녀님은 꽃꽂이는 물론 음식 솜씨도 대단하신 분으로 인자하신 모습은 꼭 성모님을 뵙는 느낌입니다.
말씀을 언행으로 몸소 보여주시는 수녀님께선 파킨슨병과 투병하시면서도 정원 가꾸기 밭일 등 못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어느 해 부활절에 수녀님이 만들어 주신 식혜 맛은 지금도 제 입안을 행복하게 합니다. 젊으셨을 때 오르간을 배우다 그만두셨다는 수녀님이 용단을 내셨을 것입니다.
“주님! 떨리는 이 손이지만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아마도 피나는 연습을 하셨을 것입니다. 고운 선율은 떨림의 여운이 있어 더욱 감미롭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느낀 선율의 놀라운 부활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