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러 해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동료를 만나고 또 헤어지기도 했다. 그들 가운데 특히 몇 사람은 말 그대로 허물없이 터놓고 지내며 소위 ‘절친’의 관계를 이어 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나로서는 정말 납득할 수 없는 계기로 인해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서먹해졌으며, 날이 갈수록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냉랭함이 도를 더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퇴직을 몇 날 앞둔 내게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유야 어떻든, 아주 오랜 만에, 퇴직을 앞둔 내게 찾아온 그 사람에게 나는 쌓이고 쌓인 울분을 유감없이 터뜨렸다.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말을 쏟아 냈고, 비난·비판·질책·원망 등 부정적인 언사가 거의 전부였다. 끝맺음 말도, “쌓인 감정을 가감 없이 토해 내긴 했는데, 분노는 잘 가시지 않는 것 같네요”였다. 물론 사이사이에 그 사람도 몇 마디 말을 했다. 퇴직하고 한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했던 몇 마디 말 가운데 하나가 문득문득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때마다 내 마음이 불편해짐을 느꼈다.
“왜 본인이 하는 일은 다 옳다고 생각하세요?”
그때 울분을 토해 내던 내게 그 사람이 한 말이다. 그때는 이 말에도 화가 나서 조목조목 따지며 반박하고, 그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말이 두고두고 나를 깨우쳐 주는 소중한 ‘훈계’가 될 줄이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실 나는 ‘절친’ 관계가 끊긴 그 사람들과 관련하여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이 다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 대해 야속해했고, 분노하기까지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상황에 놓이고 할 때마다, 그가 한 말을 떠올린다.
북한에 대해 이념성을 내재한 서로 다른 판단과 이해, 이른바 ‘남남갈등’도 내가 하는 일, 우리 편이 하는 일은 다 옳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남북 화해의 어려움도 남과 북이 서로 각자의 입장과 판단만이 옳다고 우기는 데에서 근원이 찾아지는 것은 아닐까?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모두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마태 7,3-5)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