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방송이 대세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요리 경연을 펼치는 ‘셰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요리법을 가르치고, 함께 만드는 프로그램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멍하게 TV를 보다보면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은 곧 ‘저 음식 한 번 만들어 볼까?’로 옮겨간다.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레시피를 보고 냉장고 속 재료를 떠올려 본다.
‘먹방’도 대세다. 맛집을 찾아가는 연예인들, 방송을 보다보면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검색을 해 본다. 이미 많은 블로거들이 방문기를 기록해뒀다. 위치를 파악하고 메뉴를 검색하다 보면 ‘꼭 한 번 가봐야지’로 생각이 옮겨간다. 남들의 찬사를 읽다보면 직접 체험해보고 싶은 묘한 욕구가 생긴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경쟁하듯 맛집 정보를 저장해 둔다. 한때는 캠핑도 유행이었다. 일상 탈출, 자연을 즐기는 여유 등을 상징하는 캠핑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여윳돈을 아껴 캠핑 장비를 샀고,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나아갔다. 장소를 찾고 텐트를 치고 짐을 풀고 직접 음식을 만들며 주말을 보내고 나면, 주일 저녁에는 기진맥진 지쳐 있곤 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곳을 다녀온 것인데 점점 더 피곤해졌다. 남들도 이렇게 지내겠지, 이 정도는 즐기며 살아야지라는 이상한 경쟁심(?)이 느껴졌다.
그 경쟁심을 따라 바쁘게 지내봐도, 사실 만족감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 그것을 위한 ‘따라하기’가 나를 몰아세웠다. 까다롭고 먹성 좋은 여자친구를 둔 것처럼, 무엇에 홀린 듯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새로운 장소로 떠나곤 했다.
TV는 한 때 ‘바보상자’라 불렸다. 멍하게 보다 보면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바보가 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하지만 그 별명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TV를 보는 시간에도 우리는 ‘멍 때리지’ 못한다. 휴식을 위해 TV를 켰다가도 더 ‘훌륭한 시간’을 위해 고민하게 된다. TV조차도 우리가 가만히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엇을 할 지 무엇을 먹을 지를 쫓기듯 생각하고 검색하도록 강요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낭비’로 취급되는 세상, ‘멍 때리기 대회’가 개최되기도 하는 ‘웃픈’(웃기고도 슬픈) 시대가 새삼 와 닿는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쉬는 것’, 휴식의 사전적 의미다. 즉 ‘쉼’은 일을 멈추는 것,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육체도 정신도 휴식이 필요하다. 휴식은 낭비가 아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순간들을 통해 에너지는 재생산되고 다음 할 일을 준비하게 된다. 어쩌면 이제는 ‘잘 쉬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왔는지도 모른다.
움직이라는 요구가 가득한 세상, TV조차 편히 보기 힘든 세상에서 남들 따라 휘둘리지 않고 나름의 방법으로 편하게 잘 쉬는 것도, 이제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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