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애지으셨다. 그분 말씀은 신험이 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에 의심을 벗고, 그리스도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순종하셨다. 말씀으로 지어지고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사람의 말은 어떠한가? 우리가 하는 말이 현실이 아니 되는 건 말이라는 그릇이 가진 한계에 앞서 마음 밭을 거칠게 버려두어서가 아닐까?
상처받아 “아무도 필요 없어, 떠나라”고 외칠 때, 실은 누가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고, 다투다 헤어지며 화가 풀리도록 계속 연락해 주기를 바라면서 입으로는 “연락도 하지 마”라고 한다면, 곧이곧대로 들은 상대와 오해만 쌓인다. 이처럼 우리가 말로써 뜻을 실어 보내는 대신 암호처럼 꼬아 상대를 시험하고 심지어 고통을 주어 그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확인한다면 이 말들이 이루어낼 현실은 마음속 뜻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렇게 삶을 엉클고는 삶이란 게 왜 이리 고단할까 서로 한탄한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시며 하나하나에 ‘좋다’고 감탄하셨다. 이렇게 살라고 그러셨을까?
사실 우리가 서로에게 무결하고 완벽한 모습만 바라는 건 아니다. 천지를 창조하는 권능은 더더욱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부족함은 서로의 필요를 보여 준다. 하느님 말씀의 청자로서 그리고 이웃의 마음 소리를 듣는 형제로서 우리는 말을 씨앗 삼아 하느님나라를 열매 맺을 수 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첫 신자들의 모습.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었다…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사도 2,44-47). 우리도 서로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필요를 채우자. 말에 신험을 실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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