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새 보좌주교 손희송 주교가 지난 7월 15일 오전 정진석 추기경을 만난 뒤 찾은 곳은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 대성전이었다. 그는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와 감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시간이 멈춰선 듯했다.
기도를 마친 손 주교 뒤를 따라 나선 기자들이 조심스레 질문을 쏟아냈다. 대답을 마친 그가 차에 오르기 전 기자들에게 당부한 말은 명료했다. “미화시키지 말라.”
미화(美化). 아름답게 꾸미는 일을 일컫는 말일진대, 우리사회에서는 부정적 맥락에서 주로 등장한다. 굳이 미학적 고찰을 하지 않더라도 ‘미’(美)는 ‘추’(醜)와 변증법적 대극을 형성하며, 중심·규범·이상·이성·진리·선·완벽함·명료함·질서·조화·문명 등을 나타낸다. 예컨대 보기 좋게 만드는 것, 흐뭇하게 만드는 것,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미’라는 개념에는 제도나 체계에 동질화시키는 기능이 스며들어 있다.
반면 우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 곧 세속적 현실·비합리·악·무질서·불협화음·불규칙성·과잉·주변적인 것 등은 ‘추’라는 범주 안에 묶인다. 소위 부정성(negativity)으로 갈음되는 ‘추’의 속성은 전방위적 담론 형성·예술 분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추’는 우리 의식 속에 불편한 것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엔 범죄·폭력·죽음·자살순교 등 ‘미화’에 노출되지 않은 영역을 찾기 어렵다. 이미 많은 이들이 ‘미화적 환경’에서 숨 쉬고 있다.
‘미화’는 해서는 안 될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도 정당하게 보이도록 착각하게 만든다. 이 환경에선 ‘미화’의 메커니즘을 직시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추’는 이때 등장한다.
손 주교의 짧은 한 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응축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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