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지도 않으면서 지하철 환승역을 뛸 듯이 걷는다. 계단과 통로를 휩쓰는 한 무리의 달리기 선수 중 하나가 되면 이리저리 치이다 몸도 마음도 괴롭고 지친다. 그런 때 나는 마치 내가 아니라 남인 것 같다. 어찌된 일일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 괜찮은 걸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파스카 전에 세례 서약을 갱신한다. “끊어 버립니까?”, “끊어 버립니다.” 같은 문답을 해마다 여러 번씩 되풀이한다. 이렇게 다 끊어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세례를 받고도 이슬만 먹는 몸이 되진 않았다. 나만 그런가 싶지만 아직 어디서도 그런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먹고 싸고 지치고 짜증스럽고 한 사정들이 여전하다. 습관도 비슷하다. 그런데 실은 같기만 한 건 아니다. 알아야 할 것을 알아차릴 때면 바뀐다. 버리고 다 끊어도 남게 되는 것, 그것이 참이고 그것이 하느님이다. 그래서 그저 놓으면 나는 오직 하느님 안에서(in) 하느님과 함께(cum) 있고, 하느님을 통해서만(per) 이 자리에 있다. 이때, 그리고 이때마다, 은총이 중력을 앞선다. 아무것도 나를 흔들 수 없고, 평소 아무렇지 않던 뭇 생명의 사정이 깊은 울림을 준다.
신앙인에게 선과 악은 윤리나 도덕을 넘어서는 것이다. 하느님께로부터 오면 성전에서 채찍질을 해도 선하고, 하느님께로부터 오지 않으면 열심조차 나와 이웃에게 독이 된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책으로서의 성경과 자연이라는 성경 이 둘을 쓰셨다고 가르친다. 사람도 자연의 하나. 나도 본래 하느님께서 쓰신 성경이다. 하여 하느님보다 앞세운 것들을 툭툭 털어 내면 스르르 절로 기도가 된다. 이렇게 기도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기. 혹은 기도가 되기.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1테살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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