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15일과 17일 나는 교황님을 가까이서 뵙게 되었다. 가까이서 본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평범한 할아버지였다. 8월 15일 미사를 위해 제의실로 들어오시는 교황님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키는 175cm 정도 되어 보이고, 배가 조금 나온 백발의 할아버지였다. 카리스마나 힘을 담을 만큼 크거나 건장한 체격은 아니었다. 계단을 오르기에도 불편할 만큼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는 말 수가 적었다. 처음 제의실에 들어갈 때도, 사람들과 악수를 할 때도 교황님은 당신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침묵을 지키셨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여느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교황님의 평범함 뒤에는 특별함이 숨어있었다.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침묵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지만 이 침묵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묵인하기 위해 침묵하는 여러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교황님은 8월 15일 미사 전 제의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10명 정도 되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면서 그 사람들의 아픔과 함께 하는 모습이었다. 304명의 학생들이 어떻게 희생을 당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자신이 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묻는 질문까지 교황님은 천천히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나게 했다. 실의와 아픔의 눈물을 흘리는 희생자들의 작은 소리를 교황님은 침묵 가운데 들어주셨다.
또한 교황님의 할아버지 몸매 뒤에는 젊은이의 혈기가 숨겨져 있었다. 보통의 키, 넉넉한 인심을 생각나게 하는 배, 희끗희끗한 머리까지 영락없는 70대 후반의 할아버지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는 70대였지만 30대 청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특별히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에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이었다. 8월 17일 해미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할 때 교황님의 모습이 그랬다. 교황님은 미사 전 복사를 서는 신학생 한 사람 한 사람과 웃는 얼굴로 인사해 주셨고, 젊은이들과 함께 미사를 하는 내내 얼굴에서 생기와 힘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여야 하는 청년들에게 교황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 신앙의 지혜를 불어넣으십시오.”라는 당부를 하셨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살고 있는 교황님은 70대 할아버지였지만 30대 예수님의 젊은 혈기를 품고 있었다.
교황님의 평범함 뒤에 숨어있는 비범함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파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마음을 다해 끌어안아주시는 모습. 그리고 잠들어있는 것 같은 젊은이들에게 활기찬 모습으로 다가가셔서 그들을 깨워주셨던 모습. 이러한 교황님의 모습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마치 예수님처럼 말이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인간성을 통해 성부의 놀라운 뜻을 드러내신 분이다. 마찬가지로 가까이서 뵈었던 교황님 역시도 당신의 일상과 평범함을 통해 예수님의 특별함을 드러내었다. 교황님이 가시고 난 뒤 오늘, 이제는 나에게, 우리에게 숙제가 남아있다. 교황님과 같이, 예수님과 같이 인간의 평범함을 통해서 하느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을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때, 우리는 그 안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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