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가 왼발을 절룩거리며 다가왔다. 의자에 앉아 컴퓨터 일하는 내 무릎에 두 앞다리를 올리고 연신 꼬리를 치며 안아달라고 조른다. 머리를 쓰다듬고 턱 아래를 몇 번이고 만져준다. 라테는 갈색 털의 생후 8개월 된 수컷 토이푸들이다. 석 달 전에 소파에서 뛰어내리다 왼쪽 다리가 부러졌고 두 달간 깁스했다가 2주 전에 풀었다. 사내놈이 뼈만 앙상하다. 안쓰럽다. 태어났을 때 엄마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다. 라테가 가자 이번엔 어미 마론이 왔다. 마론은 두 살이고 역시 황갈색 털을 가졌다. 마론이 두발로 내 다리를 비벼대며 나를 응시한다. 투명한 듯 짙고 검은 눈이 참 선하고 맑다. 안을 수밖에. 마론은 몸을 웅크려 내 한 팔에 기대며 턱을 괸다. 마론은 그 자세로 내 팔에 안겨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의학적으로 애완동물과 사람이 마주 보는 동안 서로에게 분비된다는 안락한 신경물질 때문일까. 아니다. 우리는 함께 죽음을 넘어섰고 그때 마음으로 서로 이심전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일본에서 공부하던 두 딸이 키우던 강아지를 데리고 귀국했다. 딸 셋은 어릴 때 강아지를 갖는 게 꿈이었다. 옛날처럼 단독주택이면 몰라도 아파트 실내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건 위생과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유학생활 동안 어려움과 외로움의 반려였다는 1살 반배기 토이푸들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마론은 우리 식구가 되었다. 하는 짓도 귀여웠고 가장 우려했던 대소변 문제도 견딜만했다. 무엇보다 나를 너무 잘 따랐다. 문제가 터진 건 12월 아이를 출산하면서였다. 첫째를 낳는데 너무 시간이 걸렸다. 이상해 살펴보니 몸 밖으로 새끼를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새벽 2시에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남은 두 마리 새끼와 어미의 건강을 위해서 제왕절개 수술을 권했다. 수술은 잘됐고 첫째는 잃었지만 둘째, 셋째를 살렸기에 안도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약 3일 뒤부터 어미가 이상했다. 새끼에게 젖도 먹이지 못하고 쓰러져 일어나질 못했다. 다시 병원에 갔고 간단하다며 들어간 수술은 거의 3시간이나 걸렸다. 대장과 골반이 유착되고 복수도 차있었으며 거의 정상적인 게 없었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직접 새끼 두 마리 젖을 밤잠을 설치며 먹여야 했다. 입원해 있는 어미를 보러 매일 병원을 찾았으나 차도도 없고 살려낸다는 확신이 없었다. 두 달이 지날 무렵 식구들은 서울대병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죽을 땐 죽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다해주고 싶었다. 다시 두 달이 더 지난 뒤 다행히 마론은 퇴원이 가능했고 지금까지는 건강하다. 새끼들도 잘 자라 셋째는 이모에게 주었다.
반년이 넘게 가족들의 생활은 엉망진창이었다. 천문학적으로 들어간 돈도 돈이지만 가족들의 심적 고통은 말할 수가 없었다. 마론을 안고 눈을 바라보며 제발 죽지만 말아다오 수도 없이 기도했다. 딸들은 낑낑대는 어미를 보며 새끼들에게 우유를 먹이며 눈물을 훔쳤다. 그때 깨달았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일은 맘에 드는 예쁜 노리개 하나를 갖는 게 아니라 다른 생명과 마음을 열고 애환을 나누며 사는 동행이라는 것을. 내가 모든 것을 내어 줄 각오 없이는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야생의 생명과 공존을 기치로 ‘KBS 환경스페셜’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끌면서 느낀 것과 또 달랐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며 새끼를 지켜내는 야생동물의 부정과 모정을 사람에 의인화하며 생명의 귀함을 방송했는데.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그때 생명은 자연 속, 화면 속의 생명이었고 마론은 내 가족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애완견을 차 밖 큰 길거리에 버리고 달아나는 동영상을 봤다. 강아지는 주인차를 따라 미친 듯이 달렸다. 이내 차는 사라지고 동영상도 끝이 났다. 한동안 안타까움과 분노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다. 품에 안긴 마론의 고개를 세운다. 서로 눈을 들여다본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인가, 생명은 무엇인가. 마론에게 말한다. 마론아, 제발 아프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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