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후손들이 한데 모여 한 해 동안 정성스레 가꾸고 키운 수확물로 조상의 은덕을 기려 바치는 차례 지내는 날이다.
독자마당을 통해 나누고자 하는 내용은 20여 년 전에 일어난 당황스러웠던 이야기이다.
아내가 햇곡식으로 정성스레 차례상을 준비하며, 밥을 지어 밥그릇에 담기 전에 밥솥 머리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며 성호경을 그었다. 아마 ‘이번 추석에도 조상님들에게 차례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하며 하느님께 올리는 몸에 밴 감사기도였을 것이다.
그때 옆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신 어머니께서 “조상에게 올릴 밥에 부정스럽게 기도를 하느냐” 하시며 불호령이 떨어졌다.
오랫동안 지녀왔던 유교적인 관습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옆에서 보기가 안쓰러웠지만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 후 매년 명절 음식을 준비하여 차례상을 차리면서도 기도 때문에 불편해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불안했다.
세월이 흘러 아들 가족이 신앙을 가지며 사는 모습이 좋아 보이셨는지 3년 전에 당신들의 선택으로 세례를 받으셨다. 이제는 성호경의 공포가 없어졌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성호경’과 얽힌 추억이 흐뭇한 미소를 띠게 만들어 준다. 부모님이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가 되어 차례를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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