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까이 지내는 친척 하나가 있다. 서로 허물없이 지내며 속내를 감추지 않는 참 좋아하는 사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불의를 멀리하고 의로운 일에 망설이지 않으며, 사랑과 평화 실천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사람’답지 않은 말을 내게 했다.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간 아주 강한 펀치를 맞은 듯했다. 생각해 보니, 사실 그 사람과는 통일을 화제로 진지한 대화가 없었던 것 같고, 그래서 충격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40대 초반인 그 사람이 밝힌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 사람들을 잘 모르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북한 사람들을 잘 모르겠는데, 잘 모르는 그 사람들과 화목하게 어울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사회적 갈등이 이중삼중으로 겹쳐 한반도가 조각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덧붙여 그 사람은 “북한이탈주민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선뜻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는 않는다”고도 고백(?)했다.
통일에 대한 우려와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버리기까지는 그 사람 나름대로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자기에 대한 이미지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속마음을 내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평소 가지고 있던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속내를 감추지 않는 그 사람의 나에 대한 믿음을 새삼 확인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그 사람이 내보인 속내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관련 설문조사 결과들을 통해 보면, 우리의 대부분은 통일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통일은 꼭 이뤄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통일이 현실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지고, 사회·문화적으로도 혼란스러워져 안정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연민과 호기심으로 다가가 손도 잡으며 위로하고 격려했지만, 그 수가 많아지고 불미스러운 일들도 알려지면서 굳이 외면하고 비난까지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실은 북한주민들도 남쪽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그들도 통일이 되면 서로 잘 화합할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
남과 북은 이렇듯 서로를 잘 모르면서 통일이 되면 한반도 살림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지레짐작을 털어버리는 것은 어떨까? 북한 주민의 이질성에 대해 적극 이해하고 수용하며, 북한주민의 삶의 모습에 있어 동질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으로 보고 이질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 또는 열등한 것으로만 평가하려는 우리 중심적, 우월적 태도를 지양하고, 진정한 동포애적 사랑과 관심으로 북한주민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하면 참 좋겠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통일연구원 명예연구위원, 북한인권정보센터 선임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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