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품식 바로 다음 날인 11일, 수원교구 문희종 주교가 주교로서 처음으로 신자들을 만난 곳은 바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였다. 비오는 합동분향소에는 그리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문 주교가 이곳에 오는 것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주교는 이곳에서 희생자와 유가족을 기억하며 신자들의 서품 축하를 정중히 미루고,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용기를 주기 위한 말을 건넸다. 이날 광화문에 있는 유가족에게도 전화로 연락했다. 문 주교는 “비가 철철 내리는 이 시간 광화문에는 가족들이 우리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달라고 외치고 있다”면서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유가족 아픔 함께하고 희생자를 위해 기도하고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문 주교의 주교로서의 첫걸음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는 소외된 이들을 만나 그들의 아픔에 함께하는 일이었다. 서품식 중에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한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었다.
문 주교의 이런 행보는 그의 목장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이재옥(모데스타) 작가가 제작한 문 주교의 목장(牧杖)에는 3마리의 양이 조각돼있다. 지팡이 목 부분을 둘러싼 3마리의 양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상징하고, 지팡이를 쥔 사람 쪽에서 보면 양의 형상이 얽혀 십자가의 모습으로 보인다. 양 떼를 만나면서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라는 의미가 담겼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섬기는 이로서 주교 직무를 받아들인 문 주교가 앞으로도 양 떼 안에서 주님을 만나는 착한 목자로서 살아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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