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 신앙이 나쁘다고 한다. 복을 비는 게 뭐가 나쁜 걸까? 다들 행복뿐 아니라 행운을 바라지 않는가? 애당초 세상이 이윤, 즉 더 적게 투입하고 더 많이 거두는 걸 목표로 한다. 돈, 관계, 명예, 운동, 다이어트, 학업… 모든 면에서 이런 계산은 이미 생활의 미덕이 아닌가? 하지만 기복 신앙은 ‘새로운 독재’인 자본주의가 우리 영혼에 들어앉은 모습이다.
시인 릴케는 생전 많은 편지를 써서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 즉, 어려움을 한탄하는 사람들에게 늘 ‘어려움에 의지해 살아가라’고 권하였다. 어려움을 없애거나 피하려 고심한 나의 지혜와는 정반대다. 어려움을 피하는 방법이 여럿이지만 으뜸은 ‘남 탓’ 하기다. 미사성제 중 ‘내 탓이오’를 욀 때마다 늘 내가 잘못한 셈 치면 맞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차츰 그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란 걸 깨달았다. 세상 모두가 어엿한 ‘나’이니 탓은 때로 내게도 때로 저이에게도 있는 것이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라(마르 12,17 참조)는 복음의 원칙은 ‘이 탓’과 ‘저 탓’을 가려내는 식별을 촉구하며 참회예절의 ‘내 탓이오’란 말로 위대하게 변주됐다. 믿음은 지성과 의지를 게을리 멈추는 핑계가 아니라 지성과 의지를 더욱 성실하고 기쁘게 다하는 동력이다. 믿음을 빙자해 ‘사람 도리’를 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보다 내가 더 현명하다며, 주님께서 삶 안에 던지시는 질문들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건 생명의 길이 아니다. 차라리 어려운 길을 걷자. 그리고 사도와 함께 인생 마지막 고백을 이렇게 하면 어떨까? “나는 훌륭한 싸움을 했으며, 달릴 길을 다 달렸고 믿음을 간직했습니다”(2디모 4,7). 형제들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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