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초에 어떤 의류회사가 고등학생에서 50대 직장인까지 천 명을 상대로 실시한 시장조사에서 한국인의 마음 온도가 영하 14도라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대학생, 그 중에서도 소위 ‘취준생’인 4학년의 온도가 영하 24.2도로 가장 낮다. 안타깝다… 가 그냥 지나간다. ‘그들’의 추위이니까. 그렇게 지나간다. 그들의 추위와 어둠 곁을. 지나가고 나면 어느새 마음의 무게도 덜어진다.
지난 7월 교종 프란치스코는 남미 방문 중 볼리비아에서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들에게 소경 바르티매오의 이야기를 풀어 주었다. 소외된 채 ‘길가에 앉아있는 사람, 아무도 중요시하지 않는 거지소경의 고통’에 예수와 함께 가던 제자들이 보여 주는 세 가지 반응을 제시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마음에 무겁게 남는다. 그것은 ‘지나가기’이다. 문제들 옆으로 지나가기, 그 문제들이 나를 건드리지 않도록 하기. “내 문제가 아니야. 세상에 병자들, 가난한 사람들이 있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건 당연하지… 그게 정상적이지, 항상 그랬잖아.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의 고통 앞에서 ‘엄정한 중립’을 지키면서, 부르짖음 곁을 평온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혹은 그 소리를 듣고 마음 불편하게, 그러나 어떻든 지나가고 나서 곧 평온을 되찾는 사람들…. 노동자들의 부당해고와 고공농성과 자살을, 대도시 부자들의 편의를 위해 가난한 노인들의 생존권박탈이 이루어지고 실형까지 받는 현장을, 세월호의 비통한 드라마를 그렇게 비껴 지나간다. 교종은 이를 ‘지나가기의 영성’이라고 부른다. 이는 타인의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며, 불의에 익숙해지고 이웃의 부르짖음에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데에 습관이 되려는 유혹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종종 기도는 하고 내 코앞의 임무를 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그렇게 내가 지나간 곳에서 예수는 ‘멈추신다.’ 거지소경의 외침을 경청하시고 그의 신앙을 칭찬하신다.
외국에서 오랜만에 한국에 오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편리함에 감탄한다. 사람만 빼고 무엇이건 배송하는 택배, ‘마트’라는 단어 앞에 붙는 단어도 다양한 쇼핑몰, 전화만 하면 달려오는 전기통신사 수리기사, 다양하고 풍성한 식재료… 그런데 그 편리함 뒤에는 택배기사의 과도한 저임금 노동, 마트나 쇼핑센터 비정규직 판매원들의 노동력 착취, 일한 시간의 분(分)을 다투어 임금이 계산되고 서비스 후 고객의 평가점수를 애걸하는 수리기사들, 비인간적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이 있다. 우리는 대체로 일상의 편리함 안에서 그들의 고달픔을, 미래에 드리우는 불안의 얼굴을, 긴 한숨을… 지나쳐 간다.
추석을 앞두고 얼마나 많은 짐이 택배기사들의 팔로 운반되고,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 판매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노동착취와 불확실성의 심리적 추위에 떨까! 교종이 “무관심의 메아리”라고 부르는 이 ‘지나가기’에서 돌아서 그들의 호소 앞에, 그들의 절망적 침묵 앞에 즉시 멈추어 경청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큰 감수성이, 연민이 필요할까! “나만을 바라보지 마라. 그래, 너희는 나를 바라보아야 하지. 하지만 나 자신만 보지는 마라. 다른 사람들 안에, 궁핍한 사람들 안에 있는 나도 바라보아라”(2014년 11월 17일 교종 강론).
서두에 말한 조사에서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해지기 위한 마음가짐으로는 배려, 존중, 나눔, 이해 등의 순서였다고 한다. 사실 이는 이웃 앞에 멈추어 경청하는 ‘관심’의 다른 이름들이다. 뭐, 조사까지 하지 않아도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우리는 피조물의 부르짖음도 듣지 않고 지나간다. 편리와 이득을 향해. 그래서 “자연은 학대받으면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하기 전에는 멈추지 않는다. 얼마 전 우리는 바닷가로 밀려온 세 살 꼬마 난민의 시신 앞에 멈추어 선 사람들의 연민의 연대를 보았다. 더 많은 사람이, 나 자신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들려오는 한숨과 신음, 파괴되어 가는 자연 앞에 멈추어 그 호소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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