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이 되는 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쇄신과 적응’이라는 정신으로 교회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고자 했다. 교황 요한 23세는 공의회를 개최하면서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방 안에 가득 채우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라”고 역설했다. 우리 교회는, 뜨겁게 타올랐던 공의회 정신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현존시키고, 희망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특히 한국교회는 공의회 정신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문하고 반성해야 한다.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회 조직 중 하나다. 사회 조직의 사전적 정의는 사회 집단 중에서 그 집단의 목표와 경계가 분명하고, 구성원의 지위와 역할이 전문화되어 있으며, 규범이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는 조직성을 지니는 집단이다. 잠깐 본당 사목을 할 때 일이다. 신자들의 마음을 모아 본당 신축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다. 신자들에게 물었다. “우리 성당은 누구의 것이지요?” 교우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의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틀렸습니다. 여기 있는 이 본당 신부의 것도, 또 여러분의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본당 신부도 임기가 끝나면 떠날 것이고 여러분도 때가 되면 떠날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이 집의 영원한 주인이십니다. 하느님의 집입니다.” 그렇다, 교회는 하느님 소유다. 일반 사회 조직처럼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를 일컬어 ‘하느님의 백성’(Populus Dei)임을 다시 천명했다(교회 헌장 9).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세워진 신비체, 거룩한 백성이다. 이러한 신적이고 영적인 차원이 없으면 교회는 다른 일반 사회 조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직면하는 가장 큰 유혹은 교회를 인간 집단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실상 교회 안에는 많은 불협화음이 존재한다. 빛과 어둠, 선과 악이 혼재한다. 선하고 완전한 사람들의 교회가 아니다. 매일 하느님께 자신들과 다른 형제들을 용서해주실 것을 청하는 ‘죄인들의 공동체’다.
요즘 교회 안에서 ‘종북’, ‘종북좌파’, ‘종북빨갱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일부 사제들과 주교들에게 이 딱지를 붙인다. 심지어 ‘신부 옷을 벗겨라, 사제직을 떠나라’는 듣기에도 섬뜩한 악마적 소리도 거침없이 한다. 예전에는 이런 소리를 교회 밖 사람들이 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천주교는 독재정권과 대중매체에 현혹된 사람들에게 눈엣가시였다. 특히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용의자를 숨겨준 혐의로 원주 교구 최기식 신부가 감옥에 갇히자, 우리 동네 사람들은 우리 본당 신부를 ‘빨갱이 신부’라고 수군거렸다. 나도 이 소리를 귀로 직접 들었다. 이처럼 천주교 사제나 수도자를 불순분자 취급을 했다. 물론 당시에도 일부 성직자와 신자들은 민주화 운동에 교회가 가담하는 것을 그리 좋지 않은 눈으로 보았겠지만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일부 교우들이(진짜 교우들인지 의심이 되지만)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이란 이름으로 이른바 ‘좌경 정치선동 사제’를 비난하는 등 교회 안팎에서 문제를 만들고 있다.
누가 ‘종북’(從北)인지 따지지 말고 우리 자신이 ‘종주’(從主)인지 자문하자. 교회는 교회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을 위한 빛과 소금으로서 구원의 도구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늘 열려 계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제사는 그분께서 지상에서 당신의 온 생애에 걸쳐 살아오신 방식의 정점입니다. 그분의 모범에 따라 사회 속에 깊이 들어가, 모든 이와 삶을 나누고, 그들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고, 물심양면으로 필요한 것을 도와주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어 주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이들과 서로 손잡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무거운 짐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고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개인의 선택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269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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