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계영은 평양에 사는 스물세 살의 성악 전공 학생이다.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에서 꽃분이가 부르는 노래를 연습하면서 목소리가 아닌 감정을 실어 노래하라는 지도교수의 질책에 늘 마음 아파한다. 가난한 머슴 집안에서 태어난 꽃분이와 달리 계영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의사인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허선경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스물세 살의 여학생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꿈꾸지만 넉넉지 못한 형편 때문에 알바를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메탈 음악에만 빠져든다. 남자친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남자 친구보다 더 큰 위안을 주는 엑소(EXO) 사진으로 자취방을 도배해 놓았기 때문이다.”
9월18일부터 24일까지 열렸던 ‘제7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 첫 날 선보였던 영화 ‘남북미생’(Two voices from Korea)은 서울과 평양에 사는 동갑내기 여학생 허선경과 방계영의 눈을 통해 분단 국가에서의 일상과 통일에 대한 미래 세대의 생각을 담아낸다. 필자의 대학원 수업을 듣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남북분단의 현실을 정치경제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일상적 차원에서 한 번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찾은 영화제였지만 정작 놀랐던 것은 학생들이 아니라 오히려 필자였다. 아마추어들의 실험적 무대 정도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첫 날부터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때문이었다. 지난 2009년 제1회 영화제 당시 30여 개국 62편의 영화가 선보였었던데 비해 올해 총 84개국에서 651편이 출품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단국 한국에서 열리는 다큐영화제에 쏠린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평양에 여러 차례 드나들면서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이는 26년 전 독일 유학길에 올라 독일 국적을 얻은 조성형 감독이다. 조 감독은 방계영과 허선경의 침실과 가정, 학교 등 일상 속 깊숙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스물세 살 젊은이의 내면을 스크린으로 끌어낸다. 물론 분단이나 통일과 같은 이야기들이 계영이와 선경이에게 피부에 와닿을 법한 문제는 아니다. 계영이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이야기했고 선경이는 삼포세대답게 통일에 대해서도 시큰둥했다. 영화가 끝나고 무대에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진 조 감독은 평양의 방계영과 서울의 허선경을 촬영 내내 따라다니면서 느꼈던 가장 큰 공통점을 이야기했다. 계영은 자신의 방에 놓인 가족 사진을 설명하면서 ‘얼굴이 너무 크게 나왔다’며 푸념했고 선경 역시 편집을 마친 영화를 보면서 ‘얼굴이 크게 나올까봐’ 노심초사하더라는 이야기였다.
영화 ‘남북미생’은 분단과 통일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핵무장과 미사일, 금강산관광을 이야기하는 동안 남북에는 부모자식 걱정에 한숨지으면서도 조그만 희망 하나에 의지해 일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통일의 주역은 바로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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