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이 에스컬레이터에 나란히 탑승해 나지막이 실랑이를 벌입니다. 오른편에 선 할아버지가 “바쁜 사람 지나가게 옆으로 비키세요”라고 하니 “사고가 날 수 있어 이거 타고는 걷거나 뛰는 게 아니에요”라고 왼편 할머니가 응수합니다. “허 참! 요즘 젊은이들 얼마나 바삐 사는데 늙은이가 길을 막고.” 할머니는 대꾸할 가치가 없으신지 침묵하십니다. 내릴 무렵 할아버지가 “쯧쯧! 이런 고집불통 잠시 옆으로 양보도 못 해요”라고 질책하시니 “사람들이 모두 한쪽에만 서면 기계가 망가진단 말이에요!” 하면서 할머니는 종종걸음을 하셨습니다.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광복 이래 ‘잘살아보세’ 세력과 ‘독재 타도’ 세력 모두가 땀과 피를 흘린 데 힘입어 세계인들이 부러워할 만큼 번영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입니다. 이젠 서로 이해하고 칭찬할 만도 한데 무시하고 헐뜯는 데만 열중합니다.
보·혁 갈등은 교회 안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죠. 자기주장을 교회의 정신이라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서 상대를 공격합니다. 보수는 오늘을, 진보는 내일을 걱정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주장이 늘 절대 가치를 갖는 진리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엔 바리사이 출신 보수주의자도 있었고 열혈당원 진보주의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는 모두 하나가 됐죠.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남의 말을 경청하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를 두고 대화에 나선다면 갈등의 씨앗이 이렇게 독버섯처럼 퍼지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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