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서부에 있는 인구 30만 명의 소도시 코벤트리는 ‘평화와 화해의 도시’로 불린다. 매년 11월 초 이 도시에서는 2주 동안 평화축제가 개최된다. 시장부터 지역 내 대학, 박물관, 방송국 등 주요 기관과 시민들이 힘을 합쳐 치르는 평화 관련 강의, 전시, 공연 등으로 도시 전체에 평화를 위한 찬양이 울려 퍼진다.
이 도시가 평화와 화해의 도시로 불리기 시작한 유래는 2차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벤트리는 영국 자동차공업의 발상지다. 재규어와 랜드로버 같은 영국의 럭셔리 카 브랜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전쟁이 터지자 밀집된 생산시설을 기반으로 코벤트리는 군수산업의 중심지로 급성장했다.
1940년 11월 14일 밤. 독일군은 영국의 군수시설을 초토화하기 위해 코드명 ‘월광소나타’라는 이름의 코벤트리 대공습을 단행한다. 밤새도록 계속된 무차별 공습으로 코벤트리 시민 중 수천 명이 숨지고 전체 건물의 3분의 2가 불타거나 파괴됐다. 시내 한복판에 있던 14세기 고딕 양식의 성 미카엘 (St. Michael) 대성당 역시 앙상한 골조만 남겨놓은 채 잿더미로 변하고 만다.
코벤트리 시민들은 폐허로 변한 대성당을 재건축하는 대신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을 택한다. 전쟁의 참혹함과 어리석음을 기억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20여 년 후 폐허로 변한 대성당 옆에 현대식 성당을 건축한다. 무너져내린 대성당의 잿더미에서 불타버린 대못 두 개를 찾아내서는 현대식 성당의 제단에 십자가로 봉헌했다.
코벤트리와 유사한 경험을 가진 도시가 바로 독일의 드레스덴이다. ‘엘베강의 진주’로도 불렸던 드레스덴에는 18세기에 지어진 성모교회가 돔의 높이만 96미터를 자랑하며 우뚝 서 있었다. 1945년 2월, 2차대전의 막바지에 드레스덴은 연합군의 폭격을 맞게 된다. 1760년 프로이센과의 7년 전쟁 당시 백여 발의 포탄 속에서도 꿋꿋이 버텼던 성모교회는 폭격 속에서 이틀을 버텼지만 1000도가 넘는 화염의 영향으로 결국 스스로 무너져내리고 만다.
성모교회는 2차대전 후 40년이 넘도록 잔해로만 보존되다가 독일 통일 이후 재건축을 시작해 2005년에야 완성됐다. 재건축을 위한 모금운동에는 공습으로 드레스덴을 초토화했던 영국과 미국도 적극 참여했다.
독일군에 공습당해 잿더미로 변했던 영국의 코벤트리 대성당과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됐던 독일의 드레스덴 성모교회는 전쟁의 비극을 유럽인들의 가슴속에 지금까지 남아있게 한 아이콘이 됐다. 그 후 영국의 코벤트리와 독일의 드레스덴은 자매결연을 맺고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해마다 11월 초 코벤트리에서 열리는 평화의 축제는 평화를 상실했던 자만이 평화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평화를 상실했던 한반도에서 평화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어디쯤 와있는지 심각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성기영 박사는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서울 민화위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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