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린성(吉林省) 창바이현(長白縣)에서 북한의 량강도 혜산을 바라보며 아주 작은 미사를 봉헌한다. 혜산 지역은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넘어오는 탈북자들이 한 때 줄을 잇던 지역이다. 강폭이 불과 수십 미터에 불과해 마음만 먹으면 탈출이 용이한 동시에 탈출 과정에서 체포 또는 사살까지도 얼마든지 가능한 지역이다.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공간으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지린성은 한국교회와는 특별한 인연을 가진 지역이다. 조선인 최초의 사제였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부제품을 받았던 성당은 지린성 창춘(長春)에서 불과 30~40분 거리에 있는 소팔가자(小八家子)에 위치해 있다. 인구 2900명 전원이 가톨릭 신자인 작은 마을의 가톨릭 공동체는 지린교구의 역대 주교들을 줄줄이 배출했을 정도로 중국 동북지역 가톨릭 공동체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뿐인가, 한국교회 최초의 해외 선교사제로 일제 강점기 중국의 지하교회를 통해 선교하다가 결국 옥중에서 순교했던 김선영, 임복만, 양세환 등 3명 신부의 발자취가 어린 곳 또한 동북 3성 지역이다.
한국교회의 전래와 순교 역사의 한 자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동북 3성 지역은 이제 가톨릭 신자들에게 또 하나의 역사적 과제를 요구하고 있다. 다름 아닌 조중 접경 지역을 통해 동북 3성과 역사와 생활을 공유해 온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남북 화해를 위한 신앙적 여정을 시작하라는 시급한 명령이다.
우리 교회는 한국전쟁 이전 북한 지역에 54개의 본당이 존재했고 5만여 명의 신자가 존재해 왔다는 기록을 갖고 있다. 물론 현재 북한에 가톨릭 신앙이 남아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평양 출신으로 월남한 신자들은 지금도 명동성당에 모여 신우회를 이어가고 있으며 일부 탈북자들은 북한 내 지하교회의 존재를 증언하기도 한다. 지난 70년 동안 북한 땅 어딘가에서 숨죽이며 살아있을 신앙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기도하고 행동하는 일은 분단시대를 사는 사제와 평신도 모두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돼버렸다.
지난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담화를 발표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 신앙인이 해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기도하는 것”이라며 민족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듬해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독일교회가 벌였던 기도운동의 사례는 분단국가를 사는 대한민국의 신앙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평화와 화해를 위한 기도가 비록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물결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동토(凍土)의 땅으로 보이는 압록강 너머 북한 지역을 건너다 보며 기도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