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외우느라 눈을 감고 입만 들먹거리고 있으면 할머니께서 “너 천주학하냐?”하며 물으셨고, 저는 “천주학이 뭔데?” 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죠. “글쎄 그게 하느님을 믿는 거라나. 나라에서 금지하는 것을 믿는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하더라” 하시며 눈물을 글썽하시던 우리 할머니! 그 때 저는 구구단 외우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할머니 말씀은 귓등으로 흘려 버렸었습니다.
그때 우리 고향에 성당이 있었다면 할머니는 열심히 기도하시러 가셨을 것입니다. 두 아드님과 따님 한 분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신 우리 할머니!
명주실을 매다가 화나신 시어머님(우리 증조모)께서 가위로 싹둑 잘라 버린 그 수천 올의 명주실이 겨울 마당을 하얗게 덮어도, 한올 한올 이어 맺어서 비단을 짤 수 있게 하셨다는 우리 할머니!
젊어서 혼자가 된 며느리(우리 어머니)가 사남매 키우느라 때리고 소리지르면 “에미야, 조용히 말로 타이르거라” 하시며 치마폭 속으로 우리들을 숨겨 주시던 할머니!
제가 할머니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 우리 할머니 속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느님께 매달릴 수라도 있었으면 좋았을걸….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30년이 넘게 지나서야 우리 고향에 교회가 생겼으니 우리 할머니는 천국이 있는 줄도 모르시고 가셨는데 천국에 가셨을까?
기차도 한 번 못 타보신 우리 할머니! 기차를 탈 때면 제일 먼저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저도 이제야 천주교리 공부를 하다가 성지순례를 갔는데 ‘새남터’에 가서 해설사 설명을 들으며 감격하고 도는데, 단두된 청년의 머리를 흰 보자기에 싸서 들고 서 계신 여인의 조각상의 슬픔과 분노와 자애로운 표정이 어쩌면 그렇게 우리 할머니와 같으신지 왈칵 눈물이 솟구쳤어요. 얌전하시고 반듯하셨던 우리 할머니! 붓글씨도 잘 쓰시고, 옛날 이야기도 많이 해 주셨던 우리 할머니! 그 심한 아픔을 속으로만 삭히셨던 우리 할머니! 이 막내 손녀가 열심히 천주교리 공부해서 할머니께 편지로 가르쳐 드릴게요.
착하셨던 우리 할머니 분명 천국에 가셨으리라 믿고, 저도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공부하고 기도할게요. 할머니 우리 그때 만나요. 이 모든 것 믿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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