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내려간 아침, 성당 마당에 낙엽이 가득하다. 봄의 생명력을 여름의 풍요로움으로 키워내 가을에 값진 결실을 맺은 나무들이 죽음과도 같은 힘든 겨울을 견뎌낼 준비로 가지에서 물을 빼고 잎을 떨어뜨려 보내는 것이다. 나무가 인간과 같은 마음을 가졌다면 자기를 살찌워주는 잎에 어찌 미련이 없을 것이며 생명의 원천인 물을 내보내는데 어찌 두려움이 없겠는가. 어리석은 욕심과 집착을 이기고 두려움을 극복한 지혜롭고 용감한 결단이라고 하겠다. 자연의 섭리에서 드러나는 이 지혜와 용기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고 늘 아쉬운 두 가지 덕이어서 기도할 때마다 청하게 된다.
지혜가 필요한 것은 우리가 어리석기 때문이다. 우리를 어리석게 하는 것은 욕심 또는 욕망이다. 용기가 필요한 것은 우리가 비겁하고 나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비겁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이다. 욕망과 두려움이 나쁜 것일까?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오히려 필요한 것이며 하느님 선물이다. 의로움에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듯이 옳은 것, 참된 것, 아름다운 것을 바라는 마음, 즉 욕망은 의지를 빚어낸다. 욕망에서 비롯된 의지가 없다면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도 없을 것이다.
두려움도 하느님 선물이다. 두려움은 자신을 아끼고 돌보려는 신중한 마음의 원천이다. 이 신중한 마음이 무절제하게 욕망에 휘둘려 스스로를 망치는 것을 막아준다. 이런 신중함 없이 지혜를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지혜와 용기는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용기가 없는 지혜는 비겁하고 이기주의적인 처세술이 될 뿐이고 지혜가 결여된 용기는 어리석고 무모한 자멸의 길로 이끌 것이다. 전통적으로 여기에 정의와 절제가 더해져야 하겠지만 참된 용기는 의로움을 향하는 것이고 지혜는 절제를 품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을 살기 위해 갖출 덕을 이 두 가지로 압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심리학자 마슬로우는 사람이 성숙하는 과정에서 머무르려는 욕구와 변화하려는 욕구가 늘 충돌하게 된다고 했다. 머무르려는 욕구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신중한 마음이고 변화하려는 욕구는 그 두려움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용감한 마음일 것이다. 안전한 세발자전거에 만족하던 아이가 두발자전거를 배우려 결심하고 배워가는 과정이 좋은 예다. 마슬로우는 이때 아이가 배우는 가장 귀중한 것은 자전거 타는 기술이 아니라 머무르려는 욕구에서 변화하려는 욕구로 나아가는 결단과 그것을 통해 얻는 만족감과 자존감이라고 한다. 절대 그 결단을 부모가 대신 내려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지혜롭게 기다리고 용감하게 나아가는 성장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기쁨을 박탈하는 가장 잘못된 교육이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무력하고 수동적이고 미성숙한 어른이 되고 만다.
신중해야 할 때 무모한 욕심을 내어 상처를 입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에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남보다 뒤처지더라도 괜찮다.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는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고, 그럼으로써 더 중요한 때에 더 좋은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아이를 존중하고 믿어주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교육 환경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신중하고 지혜로우며, 용감하고 대담하다. 그런데 입시 위주의 과도한 경쟁을 조장하는 우리나라 주입식교육은 반대 길을 걸어가고 있다. 소통할 줄 모르고 협력할 줄 모르는 기성세대가 아이들을 똑같은 길로 몰아가고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더욱 심각하다. 역사의 교훈은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통해 배우는 것인데, 비판적인 시각을 배재한 ‘긍정적인 역사관’을 가르치자고 한다. 학자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원하는 대로 만든 교과서를 획일적으로 가르치자고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 위해 눈을 덮는 것이다. 두려움과 어리석음에서 나온 무리수가 아닐 수 없다. 기성세대의 욕심으로 아이들 교육마저 망치지는 말았으면 한다.
주님, 아이들이 지혜와 용기를 배울 기회를 지켜줄 수 있도록, 저희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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