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의 젊은이들은 ‘국시’(國是)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떠올릴까. 당연히 ‘국가고시’의 줄임말을 생각할 것이고 직장인이라면 ‘국수’의 사투리 정도를 떠올릴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50대 이상에게 ‘국시’의 기억은 남다르다. 30년이 다 된 일이지만 현역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통일 국시’ 주장을 폈다가 구속돼 법정에 서는 초유의 사태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지금은 잘 쓰지도 않는 ‘국시’는 국민들의 지지도가 높은 국가 이념이나 정책의 기본방향을 뜻한다. 당시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라고 믿었다, 아니 믿어야 했다. 1986년 가을, 신민당 유성환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 도중 ‘반공이 아니라 통일을 국시로 해야 한다’고 발언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도 불구하고 이 발언 하나로 법정에 섰던 유 의원은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반공 국시는 5·16군사정변 이후 탄생했다. 5월16일 아침 군사혁명위원회가 발표한 혁명공약 제1항은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1의(義)로 삼고…’로 시작한다. 그런데 박정희 소장과 머리를 맞대고 이 공약을 작성했던 김종필 전 총리가 최근 “반공 국시는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의 좌익 경력을 씻어내기 위해 자신이 넣은 것”이라는 증언을 내놓았다. 군사정변을 일으킨 정치군인의 경력 세탁을 위한 노림수가 바야흐로 국시로 둔갑했던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통일논의는 넘쳐난다. 통일대박을 앞당기기 위해 통일준비 움직임에 분주하고 통일노래를 새로 만드는가 하면 민간 차원의 통일펀드도 조성되고 있다. ‘통일 국시’ 파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통일논의 포화현상의 이면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현상은 평화담론의 실종이다. 반공 국시를 내세웠던 박정희 시대에도 평화통일 구상선언(1970년)이나 평화통일 외교정책선언(1973년)처럼 대통령이 통일과 관련한 제안을 내놓을 때마다 ‘평화’라는 접두어가 붙어다녔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평화통일을 강조한다. 헌법 전문은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천명하고 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 수립을, 66조는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통령의 사명을 강조한다.
최근 넘쳐나는 통일논의에 ‘평화’라는 접두어가 실종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에 굳이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들어 급변사태를 염두에 두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평화 없는 통일’과 ‘통일 없는 평화’라는 선택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만큼 평화는 통일보다 앞서는 가치이자 규범이다. 신앙인들만이라도 이제부터 ‘그냥 통일’ 대신 ‘평화통일’로 고쳐부르는 것은 어떨까.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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