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도 네 개인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범국민적 시위 형태 중 인상적이었던 어느 개신교 신학대학에 붙은 현수막이다. 한 분 그리스도의 하나의 복음을 전하는 문서가 적어도 네 개라는 것이다. 어느 교회도 이 중 하나만을 그리스도의 참 복음서라고 주장하는 관제 복음서를 정하지는 않았다. 교회처럼 원래 하나로 태어났고 하나여야 하는 것이 있고, 성령의 열매인 교회 내 축성생활 단체들처럼 원래 다양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인간의 기본 상식과 합리를 거슬러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쪽에서는 역사를 보는 관점이 실제로 생각할 능력을 가진 사람의 수만큼 다양할 수 있다는 원리를 몰라서가 아닐 것이다. 특정한 ‘개인적 목적과 필요’를 위해 역사를 요리할 필요가 있어서라는 것을 국민은 안다. 현 정부의 이러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밀어붙이기는 지난 정부의 4대강 사업 밀어붙이기를 꼭 빼닮은 점이 있다. 자신의 임기 안에 길이 남을 업적을, 가문의 명예회복이라는 개인적 숙원을 기어코 이루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결심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는 정확히 프란치스코 교종이 「복음의 기쁨」에서 비판하는 점이다. 교종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는 종말론적 완성을 향한 ‘시간’과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이라는 한계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을 말하면서 “시간은 공간보다 더 중요하다”(222항)는 원칙을 제시한다(여기서 이탈리아어 ‘공간’은 ‘한정된 기간에 주어진 순간들의 연속’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리고 “이따금 사회정치 활동에서 보는 죄들 가운데 하나는 과정의 시간 대신에 권력의 공간들을 더 중요시하는 것”(223항)임을 지적한다. 그것이 ‘죄’라고 단언하면서.
영원 속의 ‘시간’ 안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공권력을 위임받은 정치행정가들에게 주어진 임기가 바로 교종이 말하는 ‘공간’이다. 권력자는 자기 공간을 넘어서는 시간을 내다보면서 임기 후에도 이어지는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전체에게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을 독단적으로 강행하고 임기 중 그 결과를 보려고 밀어붙이는 권력자를 교종은 “모든 것을 현재의 순간에 해결하려 들고, 권력과 자기주장의 모든 공간들을 소유하려 드는 미친 인간들”(223항. 필자의 사역)이라고 질타한다. 시간보다 “공간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간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공간을 소유하기보다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에 더 마음을 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간은 공간들에 질서를 부여하고 공간들을 밝혀 주며 그 공간들을 후진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는 연결된 고리들로 변모시켜 줍니다.”(223항)
그런데 이런 식의 업적주의나 독단은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있는 위험은 아닐까? 본당이나 수도회나 교회 내의 모든 단체들에서 일정 기간 권한을 받은 사람의 과도한 권한행사로 인해 그의 임기 후에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교종은 ‘시간’과 ‘순간’의 관계에 대해 “순간 안에 사는 것과 시간 안에 사는 것은 다르다”면서 “그리스도인은 순간 안에 살줄도 알고 시간 안에 살줄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2013년 11월 26일 강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주권자일 수는 있지만 ‘시간’은 우리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것이다. 권력자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 국민을 섬기도록 국민에게서 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공동체를 섬기도록 권한을 부여받은 이들은 스스로 시간의 주인인 양 살기보다는 자신의 권력이, 권한이 끝난 다음날 아침의 기분을 생각할 일이다. 하느님 시간 안에서 겸허히 과정을 시작하는 대신 권력의 한정된 공간들을 절대화하는 ‘죄악’을 즉시 중단하고 모름지기 자신의 ‘권력 다음’을 생각할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길이 남는 것은 업적이 아니라 오명과 수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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