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결정하고 근거 논리를 내세웠지만 이에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검정교과서에 의해 좌편향된 역사’를 바로 잡겠다는 정부의 설명에 대해 종교계와 학계는 민주주의와 헌법에 어긋나는 정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이 문제가 학계가 아닌 정치적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사관을 미래 세대에게 주입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을 특정 정치집단이 은폐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정화를 둘러싼 위헌 심판도 진행될 예정이어서 파장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사의 대가이자 사학계 원로학자인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는 정부의 역사 인식에 대해 강력한 어조로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정부의 말대로라면 좌편향된 검정교과서를 통과시켜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의 교리를 가르치는 가톨릭 교회라 할지라도 역사를 ‘하나’로 규정짓지 않으며, 역사를 다루는 교과서는 학계의 책임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과서 국정화는 권력의 영속화를 추구하고 사상 통제를 일삼은 전체주의 패권국가에서나 일어날 일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국정화 교과서 필진들에 대해서도 “나름의 ‘신념’으로 참여하고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인류 보편적 가치, 민족, 인권을 확보하는 길인지 잘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교과서는 공동 책임으로 집필하는 것이지, 근현대사를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미국,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 OECD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여론 무마용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황우여 교육부 장관조차 지난달 “국정화 교과서를 영원히 지속하자는 것은 아니며 자유발행제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헌법재판소 역시 지난 1992년 “국정화보다는 검·인정, 자유발행제가 헌법의 이념을 고양한다”며 “역사 교과서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자유발행제는 정부나 교육행정기관의 개입 없이 교과서 채택 여부를 학교가 직접 선택하는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법조계로 번져 헌법재판소 위헌 심판대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장덕천 변호사는 11월 11일 아들(10)과 부인을 대리해 정부의 국정화 방침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장 변호사는 교육부가 확정고시한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과 초·중등교육법 29조 2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은 교육제도 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며 “교과서 발행 형태를 법으로 규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은 헌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사 교과서 채택 방법 변천
우리나라 교과서 제도는 국정, 검정, 인정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한 교회 안팎의 반대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시도되고 있는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정’은 국가가 편찬하고 저작권을 갖는 교과서로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같은 교과서로 수업하게 된다.
‘검정’은 민간이 개발하고 출판한 도서 가운데 국가의 검정 심사를 통과한 교과서다.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검정 교과서 중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다.
‘인정’은 민간에서 펴낸 도서 중 교육부장관이 인정하고 시도 교육감이 승인한 교과서로 역시 각 학교는 인정 교과서 선택권을 갖는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검인정 변천과정은 다음과 같다.
△해방 후~1973년: ‘국사’ 교과서 검정제도 시행. 중고등학교에서 모두 20여 종의 교과서 사용
△1974년: 박정희 정권 ‘10월 유신’ 후 1종 국정교과서로 바꿈
△2002년: 근현대사 부분의 역사 왜곡에 대한 지적으로 국사에서 근현대사를 분리해 검정제도 시행
△2011년: 기존 국정으로 남아 있던 국사와 검정으로 바뀐 근현대사를 ‘한국사’로 통합하며 검정제도로 일원화
△2015년 10월 12일: 교육부 한국사 국정교과서 행정예고
△11월 2일: 한국사 국정교과서 행정예고 종료
△11월 3일: 한국사 국정교과서 확정고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교회 반응
△10월 22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4대 종단 종교인협의회 정부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면 철회” 요구
△11월 12일: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명백한 역사 날조행위” 성명서 발표
△11월 16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서울광장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기도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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