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3일 성균관대학교에서 심산상 시상식이 열렸다. 심산상은 이 나라 마지막 선비라 불리는 심산 김창숙 선생을 기리는 상으로 2004년 이후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10여 년 만에 부활한 18회 심산상은 김중배 선생이 수상했다. 김중배 선생은 수상소감에서 지금 한국사회를 ‘모국어의 번역이 필요한 불통의 시대’라 규정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정상의 정상화’라 말한다. 그러나 더 많은 분들은 이 말을 ‘정상의 비정상화’로 듣는다. 우리말이 달라서 참 어려운 시대다. 누군가는 소통을 말한다. 말이 다른데 어떻게 소통이 되나, 말 자체가 공유되지 않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통해서 소통을 하겠나, 이것이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나라가 하나도 구해내지 못하는 모습을 종일 TV를 통해 보며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국정’의 ‘나라 국’자를 쓰지 못하고 단일교과서, 균형교과서 하더니 ‘올바른 교과서’라 부른다. 동학혁명을 다룬 소설 ‘나라 없는 나라’가 혼불문학상을 받는 시대다. 심산에게 ‘선생님,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나라가 이런 나라입니까’ 묻고 싶다. ‘빌어먹을 놈, 너는 이따위 나라를 만드는데 일조한 놈 아닌가’라는 심산의 질타가 들린다. 늙고 비겁한 내가 뻔뻔하게 이 상을 받은 이유는 결코 잠들지 못하는 선생의 얼을 다시 호명하고 불러 세우는 불쏘시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시상식이 열린 국제관 소강당을 가득 채운 축하객들은 김중배 선생과 함께 아파했다. 그날 가을비가 내렸고, 지구 반대편 파리에서는 테러가 일어났다.
1960년 김구 11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이승만이 물러나고 나서야 비로소 열린 추도식이었다. 그 자리에 다른 이의 등에 업혀 연단에 오른 이가 있었다. 심산 김창숙이었다. 총독부에 등을 돌려 집을 지은 만해 한용운, 일제에 허리 굽히지 않겠다며 ‘꼿꼿세수’로 유명한 단재 신채호와 함께 일제 강점기 3절로 불리는 이. 나석주에게 거사자금을 대고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국내에 잠입했다 잡혀 모진고문을 당해 앉은뱅이가 된 이. 그럼에도 일제의 법을 무시하며 변호와 상고조차 거부했던 이. 재집권을 위해 국회의원이 탄 버스를 강제연행하고 깡패들을 동원해 부산정치파동을 자행하는 이승만정권의 독재를 보며 ‘내 죽거든 내 눈알을 빼 대한문에 달아 놓으면 포악한 독재정권이 반드시 망할 것을 목격하리라’며 피를 흘리며 싸운 이. 두 아들도 독립운동으로 잃고 모은 재산 하나 없이 서울 변두리 여관과 병원을 전전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이. 심산은 격변의 일제청산과 반독재, 민족통일을 꿈꾸며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평생을 살았던 이 땅의 마지막 선비였다.
대림 2주이자 인권주간이다. 성탄을 기다리며 예수탄생의 의미를 생각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 스스로 고난을 자처해 이 땅의 평화와 사랑을 실천했던 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교회는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공감하는 공간이다. 말씀과 교회는 세상과 소통이자 사랑의 실천도구이다. 말씀과 교회는 곧 언론이자 미디어다. 지금 교회는 소통하는가, 말씀은 살아 있는가. 분단은 여전하고 민주는 후퇴했고 불평등과 소외는 깊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비정규직의 아픔, 농민들의 절규, 청년들과 소수자들의 눈물을 말씀과 교회가 보고만 있지 않는가. 기자 피디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기사와 프로그램에 ‘현실’이 담겨있지 않으면 그것은 사기다. 현실은 ‘오늘’이어야 한다. 오늘의 고통과 분노를 읽어라.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라. 기사와 프로그램은 ‘오늘 삶의 현실’을 기록해야 한다. 대림절에 세상과의 소통을 생각한다. 말씀과 교회는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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