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평생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지역번호로 걸려온 전화.
“안녕하세요, 여기는 ㅇㅇ복지센터입니다. 다름이 아니라~~”로 시작된 전화기 건너 목소리는 “우리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이 많으니 알려드리는 계좌로 후원을 좀 해 주십시오”라며 목적지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갔다. 처음에는 의아해 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복지센터에서 나한테 왜 ?’ 후원이야기에 다다라서는 ‘이거 결국 스팸전화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망설이자 전화기 건너 여성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다들 힘들고 어렵다, 더 어려운 이들을 생각해야 한다, 월 1만원이 모이면 여기 계신 분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다, 가족도 없는 분들을 우리가 챙겨야 한다…. 마치 쇼핑 호스트인 듯 망설임 없이 호통까지 치며 후원을 권유해 오니 의심이 오히려 더 커져만 갔다.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어떻게 알어? 이런 낯선 방법으로 후원을 받는데, 올바른 복지센터 맞을까?’
단체 이름이 무엇인지 묻고, 좀 더 알아보고 연락하겠다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후원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돈을 가로채는 건 아니겠지…’라는 것.
한편으론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기부를 권해야 할 만큼 자발적 후원자가 적다는 거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쪽이든 입맛은 씁쓸했다.
기부문화 활성화를 아무리 외쳐도 참여하는 이들은 한정돼 있고, 그에 참여하지 못한 대다수 서민들은 ’내 스스로 느끼기엔 가난해도 어려운 이들보단 나은 건데 남을 외면하고 살고 있나‘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죄책감과 사회적 책임감, 그 어딘가를 자극하며 태어난 후원 요청 전화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낯 모르는 이에게 기부를 강권해야 하는 시대, 후원이라는 말에도 의심을 품어야 하는 시대. 우리는 참 서글픈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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