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집권 이후 첫 번째 이산가족 상봉이 2014년 2월 20일 있었다. 이 행사가 끝나고 한 세미나장에서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의 북한 입국을 주선했다는 미국 교포 여성을 만났다. 그 여성은 ‘추운 겨울 김정은이 큰 호의를 베풀어 이산가족 행사를 개최해 주었는데 과거와 달리 대한민국 정부가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덧붙여 ‘이런 식이면 남북관계는 더 이상 진전이 없을 것’이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이 잠시 만나는 것이 김정은의 은덕이며 대한민국은 이에 보답하기 위해 공물을 바쳐야 한다는 논리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이 빈손으로 갔겠어요? 많은 선물을 가져갔을 겁니다”라고 응수했다.
과거 북한에 농업지원을 해 왔던 모 대학교 교수도 얼마 전 평양을 다녀왔다. 이분은 이번 평양 방문이 승마여행이었다고 한탄했다. 일정을 북한당국이 결정하는데 김정은의 치적 홍보에 주력하다보니 정작 본래 목적인 농업기술협력은 반나절에 그쳤고 평양에서 말만 실컷 탔다고 자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이 속한 단체는 실질적인 농업 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시성 대북 교류지원사업은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만성적으로 비료가 부족한 북한은 역설적으로 유기농으로 생산량을 증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평안남도 숙천군은 무기질 비료에 의존하지 않고 농업생산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비롯해 여러 농업 관련 실험이 진행되는 농업연구기지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2015년 숙천군에 비닐하우스를 제공했다. 서울 민화위가 지원을 결정한 이유는 북한 실정에 맞는 농법이 개발되면 북한 전역으로 확산되고 이는 북한주민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러 단체들이 대북교류와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말하는 것과 다른 경우가 태반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돼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가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더욱 심각하다. 그래서 대북지원은 시작부터 사후 모니터링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하나라도 간과하면 북한 특권층의 배만 채우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물론 근본적 이유는 북한당국의 폐쇄적인 운영과 부당한 요구에 기인한다. 그렇다고 고통 받는 북한주민이 존재하는데 지원을 포기할 수는 없다.
북한 농민들과 찍은 사진으로 승마장에서 보낸 시간을 감추는 것도 하느님께서는 보고 계셨다. 우리 교회부터 하느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 평양에 다녀왔다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사진 찍기에 동분서주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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