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 중에 첫째(건우)가 발달장애 1급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삼형제를 데리고 만리장성과 백두산 여행을 떠났는데 북경공항에서 입국금지를 당했다. 참는 것을 어려워하는 첫째가 그만 울고 때리고, 소리를 지르는 이상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장애가 있어 그렇다며 이해를 구했지만 공항직원은 끝내 입국을 거절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엄마 없이 여행을 한 번 해보겠노라는 둘째에게 셋째를 부탁하고 첫째와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많이 지쳐 있던 내게 그 일은 심한 우울감에 빠져 들게 했다. 그런데 그때, 우리 모자에게 천사 같은 선생님이 나타났다. 담임도 아닌 그 선생님은 단지, 건우에게 ‘빚을 많이 진 것 같다’고 하시며 친자식처럼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그 사랑은 우리 모자에게 큰 위로가 됐고, 그 인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추석 때, 선생님을 뵙고 오는 길에 첫째에게 물었다.
“건우야! 또 누구 보고 싶니?” 언어장애가 심한 건우가 내 손바닥에 “이선영 선생님, 친구 장세희, 김태진 신부님(예수회)”을 썼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건우가 내 손바닥에 써준 세 사람은 북경에서의 일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 무한사랑으로 위로해 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의 영혼 안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도와 준 사람들. 말도 잘 못하고 표현도 잘 못하지만 다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째가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대성전에서 온전히 미사를 드리기까지는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고통이 지나가려면 고통을 짊어지라고 했던가! 하느님의 사랑을 믿으며 온전히 내어맡기니 신기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났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것은 ‘하느님의 자비’였고 은총이었다.
첫째는 요즘 복지관에서 돌아오면 틈나는 대로 뜨개질과 비누 만들기를 하고 있다. 행복해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엄마인 나 역시도 흐뭇하다. 비록 장애를 갖고 있지만 자신이 지닌 재능으로 고마움을 전하기도 하며 자비를 베풀기도 하는 것이다.
‘자비’는 한 사람을 살리고 한 가정을 서게 하며 어두운 세상을 살 맛 나는 곳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자비의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 사랑에 힘입어 나 역시도 특수학급 장애학생들에게, 또 주일에 한국어수업을 하러 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5년 12월 8일~2016년 11월 20일까지 1년 간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셨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느님 자비의 전달자가 되도록 초대하신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교의 ‘자비’가 궁극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 주위를 한 번 돌아보자. 자비는 기쁨과 위로, 용기와 희망을 준다.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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