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학창시절 우리집은 화목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부에 별다른 뜻이 없기도 했지만, 화목하지 못한 집안 분위기도 한몫해 나의 성적은 매우 좋지 못했다. 그런 내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성당이었다.
중·고등부 미사 시간은 늘 즐거웠다. 친구들과 함께 성가를 부르는 것도 좋았고, 수고했다고 이야기해주는 교리교사 선생님들도 좋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자연스럽게 교리교사가 됐다. 어릴적 함께 해준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나도 그런 교리교사가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별로 어렵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이 얼마나 안이한 생각이었는지 곧 깨닫게 됐다.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교리 지식으로는 교리교사를 할 수가 없었다. 교리 주제가 미리 정해지고 준비할 시간을 넉넉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나의 수업은 엉성하게 마무리 됐다. 받은 은총과 사랑에 감사드리고자 시작했던 교리교사인데, 어째서인지 점점 민폐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3년 동안 교사활동을 마치고 입대를 했다. 누구나 군 생활이 쉽지 않겠지만 나는 특히 더했다. 허리를 다쳐서 군 생활을 중도에 마치고 나와, 남은 기간을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신했다. 운동선수 혹은 관련 직종을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방황을 마치기 위해 선택한 곳 역시 성당이었다. 사실은 그냥 잠깐 들릴까 하고 온 성당에서 선배 교리교사를 만났고, 다시 교리교사를 하게 됐다.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길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연이은 교통사고로 본당에서 맡은 여러 직무들을 수행하지 못해 결과적으로는 본당에 큰 폐를 끼치게 됐다. 그리고 한동안 성당에 발길을 끊었다.
성당을 열심히 다녀도 불행한 일은 일어나고, 반대로 냉담을 해도 좋은 일은 생겼다. 아니 오히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때보다 냉담할 때 주말에 여유가 있고, 나쁜 일도 생기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성당에 나가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은 언제나 답답했다. 이런 나에게 교리교사 형이 말했다. “주님께서는 내가 성당에 열심히 나가서 나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지었을 때 더 보살펴주시는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 내가 바로 그런 상황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는 ‘자비의 희년’이다. 내가 오랜 냉담을 마치고 다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라고 하느님께서 특별히 희년을 선포해주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본당에서 또 민폐를 끼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주님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자비의 희년’이니까 이렇게 부족한 나도 즐겁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한해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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