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의 위력을 보고 세계 여러 나라들은 핵무기가 외부의 침입을 막아줄 수 있는 최고의 명약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 그리고 중국, 영국, 프랑스 등이 잇달아 핵무기를 개발했다. 그 결과 인류는 지구를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되자 국제사회는 더 이상 핵무기를 개발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래서 1970년 3월 5일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탄생시켰다. 핵의 평화적 이용은 보장하지만 핵무기의 이전과 개발을 금지한 것이다. 북한도 이에 동의해 1985년 12월 12일 NPT에 가입했다. 그런데 1993년 3월 12일 탈퇴를 선언하며 핵개발 의사를 표명하더니, 2003년 1월 탈퇴했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국제사회를 기만하며 핵개발을 추진해 플루토늄 추출방식과 우라늄 농축 원자탄 개발에 이어 2016년 1월 6일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1985년부터 2003년까지 북한은 NPT회원국이었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의혹이 있으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 것이 기본 의무였다.
수소폭탄 실험에 고무된 김정은은 이제 핵무기의 다탄두, 소량화, 경량화에 나설 것이다. 3년이 지나면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하고 자축할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면 다핵탄두미사일(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re-entry vehicle, 약칭 MIRV)을 개발했다고 난리 법석을 떨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 무기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991년 붕괴되기 직전 소련은 1600여 발의 핵탄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핵탄두가 소련의 해체를 막지 못했고 주민들은 유럽의 구호물자에 의지해야 했다.
북한에 우호적인 이론가들은 일련의 핵개발로 체제안정을 확보했다고 판단한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자 외국 자본가들이 중국에 투자해 오늘날 G2로 성장시켰다. 그들은 중국의 핵무기가 무서워 투자한 것이 아니다. 돈을 벌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이 붕괴됐지만 외국 자본가들은 자원개발 외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그들이 다른 곳에 투자하지 않은 것은 러시아의 핵무기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러시아 체제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핵무기 개발 못지않게 경제를 강조한다. 북한은 러시아처럼 자원이 풍부해 투자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중국처럼 저렴한 대규모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북한은 20여 년간 국제사회를 속인 신뢰할 수 없는 나라일 뿐이다. 그래서 핵경제 병진노선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