툿찡 포교 베네딕도 대구수녀원 봉헌회에 입회하여 4년차가 되었다. 청원기를 마치고 수련기에 사부(師父)인 베네딕도 성인의 영성의 ‘뿌리를 찾아서’ 이탈리아 베네딕도 수도원을 순례하기 위하여 10여 일의 일정으로 순례길에 올랐다.
봉헌회 수련과정에 베네딕도 수도 규칙서 해설 시간이 있다. 베네딕도 수도 규칙서는 성인의 영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서방 수도승들의 유일한 규칙서로 인정받고 있다. 규칙서의 특징은 분별력과 명쾌한 문체이다.
로마에서 우선 몬테카시노를 찾았다. 몬테카시노 수도원은 해발 약 500m쯤 되는 산 정상에 흰색 옷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쳐다볼 때는 아득하였으나 구름 위를 걷는 몇 번의 아찔함을 경험하고 수도원 입구에 도착했다.
수도원에 들어서자 베네딕도회 카리스마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를 느낄 수 있었다. 몬테카시노 수도원 내부는 견고하고 웅장한 성곽 같았다. 하느님의 섭리 없이 인간의 의지로 이룩하기 불가능한 장소이며 규모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 시작과 마침이 기도였음을 침묵으로 전하는 것 같았다.
베네딕도 성인은 몬테카시노 수도원에서 수도 규칙서를 집필하고 선종했다. 수도 규칙서 집필 장소는 잘 알려지지 않아 순례코스에 포함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순례 지도수녀님이 수도원의 허락을 받아 지하에 있는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 로마에서 사목활동을 하는 신부님이 동행하여 유창한 통역으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수도 규칙 강의를 담당한 수녀님과 함께 규칙서 산실을 둘러보는 감동은 전기에 감전되듯 온 몸을 휘감았다.
베네딕도 성인께서 창으로 통하는 빛을 이용하여 모든 수도원에서 사용할 만큼 중요한 지침인 규칙서를 저술하고 실천했으니, 몬테카시노 수도원은 수도원 가운데 수도원으로 삼을 만한 곳이었다.
지하방에서 올라와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수도원 성당 지하에 모셔진 성인의 유해를 친견하기 위해 지하 계단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소리 없이 움직였다.
그 곳에는 베네딕도 성인과 쌍둥이 자매 스콜라스티카 성녀가 양쪽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시를 받은 것처럼 장궤를 하고 머리를 깊이 숙인 채 기도와 묵상에 잠겼다. 심장 박동소리가 들릴 만큼 정적이 흘렀다. 조용히 하나 둘 무릎을 펴는데 얼굴에는 빛이 가득하고 윤기가 흘렀다.
베네딕도 성인의 활동은 수비아꼬에서 시작하여 몬테카시노로 이어졌다. 그런데 로마에서 출발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하여 역순이 되었다.
수비아꼬는 성인이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한 곳이다.
성인은 480년 경 이탈리아 중부 노르치아 자유시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소년기를 고향에서 보낸 뒤 청운의 꿈을 안고 로마에 유학을 하였으나 도시가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회의를 느껴 엔피데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에 기숙했다.
유모와 함께 생활하면서 유모가 잘못하여 망가뜨린 채를 원상복구하는 기적을 보이자 주위에서 관심을 보이며 사람들이 모이자 수비아꼬로 옮겨 동굴생활을 시작했다.
동굴은 Sacro Speco(거룩한 동굴)라 부른다. 지금은 동굴을 중심으로 건물을 지어 경당과 수도원이 되었다. 성인께서 동굴에서 기도와 묵상으로 생활하는 동안 수많은 유혹이 있었는데, 그 중에 욕정의 유혹에 시달리자 이를 이겨내기 위하여 장미 화단에 몸을 뒹굴어 고통으로 몰아냈다고 했다.
장미화단 가장자리에 서서 세상 작은 유혹에 쉽게 무너지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을 하였다.
베네딕도 성인의 영성을 찾기 위한 순례 일정은 길지 않았지만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베네딕도 영성의 뿌리는 ‘기도하고 일하라’는 것을 깊이 새기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 기도가 우선되어야 함을 깨우친 유익한 순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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