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됐던 일이었다. 지난해 한·일 외무장관들이 ‘급하게’ 만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합의를 이뤘다고 의기양양하게 발표했을 때부터다. 한국 정부는 피해 당사자들에게 사전에 단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피해 할머니들이 연로하신 상황이 시급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에 그쳤다. 일본 정부는 합의문이 나오자마자 태도가 돌변했다. 돈도 주고, 장관을 통한 총리 사과도 ‘간접적으로’ 한마디 했으니 이제 됐다는 식이다. 최근 일본 외무성은 “우리 일본은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적 없다”며 국제사회에 한층 더 강력한 오리발을 내밀었다. 국민 대부분이 예견했던 일이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만 이를 몰랐던 모양이다. 더 나아가 “그래도 사과가 있었으니 우리가 모두 받아낸 셈”이라며 친절하게도 일본에 ‘역사의 면죄부’까지 줬다. 정말 진심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박수 받을 일이지만 돌아가는 형국은 정반대다.
올해 삼일절의 화두는 단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정부 합의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주변에서 졸속 합의에 반대하는 미사가 봉헌됐다. 청계광장에서는 시민사회단체와 학생들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나서 역사를 바로잡자고 외쳤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 관객 수는 260만 명을 돌파했다.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드디어 청산했다’고 자화자찬하는 양국 정부를 보며 국민은 분노한다. 과거를 청산할 권리를 과연 그 누가 그들에게 주었나. 인격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인권을 무참하게 말살당하고 인생을 참혹하게 보내야 했던 이들에게, 그들은 또 다시 잔인하고 교묘하게 호통친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제발 좀 잊어주시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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