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요? 뭐가 있어야 베풀죠. 제 코가 석잔데….”
얼마 전 자비에 관해 취재하던 중 만난 지인이 껄껄 웃으며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다. 평소 봉사에 열심하고 신심 깊은 그였기에 그 말이 농담으로 들렸지만,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어쩐지 자비롭지 못한 자신을 위한 변명처럼 메아리쳤다.
세상살이에 쫓기다보면 ‘자비’란 말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래도 ‘자비’란 여유 있는 사람이 부족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자비’에 대한 잘못된 인상은 무료급식소 ‘햇살이 가득한 집’을 취재하면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이곳에선 찾아오는 이가 누구든 따듯한 라면 한 그릇을 대접한다. 비록 인스턴트 라면이지만, 하루 한 끼조차 먹지 못하는 이들에겐 참 고마운 ‘자비’다.
이곳을 운영하는 최성일(요셉·62)씨는 독지가도, 자선사업가도 아니었다. 오히려 부도를 겪고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어 아직도 월세방에 사는 형편이다. 사실 한 달에 100만 원 가량 드는 급식소 운영비도 최씨의 경제 사정에는 버거운 짐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우쭐해져서 동냥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 마음이 편하다”면서 “저도 어렵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려는 마음을 실천에 옮기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무릎을 쳤다. 자비의 본질인 사랑을 빼고 자비를 생각하니 동냥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말씀을 다시 묵상하는 순간이었다. 이 자비의 희년에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아니 ‘사랑’해주신 것처럼,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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