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셉수트는 이집트 제18왕조 제5대(재위 기원전 1503?-1482?),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이집트를 통치했던 여성 파라오다. 파라오는 신의 대리자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어떻게 여성이 파라오가 될 수 있었을까?
하트셉수트는 투트모세 1세의 맏딸로, 여자에게 왕위 계승권이 없어 이복동생 투트모세 2세와 결혼했다. 체질적으로 허약한 투트모세 2세는 하트셉수트와의 사이에 딸 하나만을 두고, 후궁에게서 투트모세 3세를 낳고 일찍 사망하였다. 투트모세 3세가 왕위를 계승해야 하지만 아직 왕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계모인 하트셉수트는 섭정이자 투트모세 3세와 공동 파라오가 되어 20여 년간 이집트를 다스렸다.
그녀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섭정 왕후의 옷 대신 파라오의 복장에 두건을 쓰고, 가짜 턱수염을 만들어 달고 과거 파라오들이 했던 것과 같이 왕권 강화를 위해 여러 방면의 일을 추진하였다. 각종 토목공사를 추진하고, 상·하 이집트 통일을 위해 전쟁에 나갔으며, 시나이 광산(鑛山) 채굴과 교역(交易)을 위해 푼트 원정(遠征)을 하였다. 아버지 투트모세 1세를 기리기 위해 테베에 신전을 지어 스스로 제사장이 되기도 했다. 이에 왕권, 군권 그리고 신권을 모두 쥔 최초의 파라오가 되었다. ‘남장을 한’ 여성정치인으로 국민들에게 강함을 보여주고자 많은 일을 한 덕분에 후세 사람들은 그녀의 치세시기를 이집트 최고의 전성기, 혹은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녀는 여성성을 버리고, 수염을 만들어 달고 다니며 공식석상에서는 어떠한 여성적인 면모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그녀를 흠모한 충신이자 천재 건축가 센무트는 그녀가 죽으면 묻힐 장례사원(葬祭殿)을 다이르 알바흐리에 지어 바쳤다. 그 구조와 아름다움에서 그녀의 모습과 성격을 통찰할 수가 있다. 또 과거 남성 파라오들이 왕권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국가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면서 일생에 걸쳐서 지은 피라미드 대신 꼭대기만 피라미드와 닮은 오벨리스크 축조라는 새로운 전통을 세웠고, 상·하 이집트의 통일과 유래 없는 평화로운 시기를 만들어 여성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그래서 ‘가장 공경 받을 만한 여인’이라는 뜻의 ‘하트 체페수트’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을 수가 있었다.
최근 세계적으로 여성정치인들이 뜨고 있는 추세다. 앙겔라 메르켈(독일) 총리와 아웅 산 수치(버마)와 차이잉원(대만), 콜린다 그라바르 키타로비치(크로아티아), 엘런 존슨 설리프(라이베리아)와 힐러리 클리턴(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굳건한 유리천장을 깨고 있는 여성 리더들이 있다. 메르켈 총리는 2005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한 후 3선을 연임하며 유럽이 직면한 난민과 테러 등 각종 위기 상황들에 강인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도 슈퍼마켓에서 혼자 장을 보는 소박한 모습으로 ‘엄마 리더십’의 대명사가 되었고, 아웅산 수치와 엘런 존슨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민주화를 이끈 지도자로 기다림과 비폭력이라는 방식으로 국가체계를 바꾸었으며, 키타로비치는 진솔한 태도로 권위주의에 지친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대세계는 3500년 전 이집트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르다. 여성성이 흠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여성정치인들이 뜨고 있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챙겨주듯이, 현대사회가 그만큼 엄마 리더십을 찾는다는 뜻이다. 남성보다 더 격렬하고 공격적이고 투쟁적이며, 때로는 파괴적이기까지 한 여성(정치인)이 아니라, 따뜻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여성 지도자가 20대 국회에는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김혜경(세레나·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강의전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