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창을 여민다. 볕이 잘 드는 거실 한편에 화분 몇 개가 놓여 있다. 풍로초, 제라늄, 난초, 다육식물, 선인장 등이 줄지어 있다. 그중에서 볼품없이 일그러지고 소외되어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선인장에 눈길이 갔다. 온몸에 가시가 돋쳐 고통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닌가. 감탄과 함께 경이롭기까지 했다.
저들 화초를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우리는 저마다 살아온 인생이 다르다. 장미꽃처럼 화사한 삶도 있고 들꽃처럼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인생도 있으리라. 사람들의 선호도에도 밀려 세인의 관심 밖에서 고독하게 자신을 가꾸는 삶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삶도 소중하며 허투루 봐서는 안 된다.
선인장의 강인한 생명력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갖은 고생으로 자신을 지키는 선인장과는 달리 조그만 일에도 쉽게 타협하거나 포기하면서 살아왔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힘든 일을 마다했으며 난관에 부딪히면 돌아가는 길만 찾았다.
선인장에서 핀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랑’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힘이 있었기에 꽃을 피웠으리라. 자신을 사랑하고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행복과 평화를 피우리라.
선인장은 혼탁한 세상 풍파를 견뎌내면서 도도함과 용맹함을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또 나약하고 무책임한 나를 질타하는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러나 선인장은 나의 나약함에 힘을 실어 주기도 한다. 앞으로 닥칠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내하며 벽을 넘는 노력을 하면 언젠가는 결실의 열매가 열린다며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낸다. 그래서 희망은 부끄럽지 않게 한다’(로마 5,3-5)고 속삭인다. 따스한 햇볕과 함께 차 한 잔을 마시며 그윽한 말씀을 마음에 담는다.
이제는 나의 삶에 부끄럽지 않도록 다독이는 데 힘쓰리라. 일상에서 독침같이 보였던 세상에서 다가오는 온갖 가시쯤이야 나의 허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리라. 인내와 고통의 벽을 가르쳐 주었으면서도 거드름을 피우지 않은 선인장을 늘 곁에 두어 삶의 지표로 삼으리라.
선인장의 꽃말은 열정이다. 열정의 삶을 살았기에 예쁜 꽃을 피웠으리라. 나도 너처럼 어떤 고난이 온다 해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피우리라. 남은 인생 뭐 그리 집착하랴. 하나씩 내려놓으면 삶의 무게도 가벼우리라. 그 길에서 나의 십자가는 나를 일으키고 세우는 지표가 되리라.
하찮게 여겨 쓰레기 더미에 묻어버릴 뻔했는데 대신에 나의 오만함을 묻으련다. 깨우침의 가르침을 주었으니 너를 사표(師表)로 삼으련다. 감미로운 사색에서 깨어보니 햇살이 저만큼 비켜 물러섰다.
민병옥(비오·대구대교구 경산 중방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