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동주’를 보았다. 흑백의 장면들 하나하나가 한 편의 시 같았다. 윤동주의 시편들에 대한 깊이 있는 주석이란 평가를(문학평론가 신형철) 들을 만했다. 당시 사람들의 삶과 생각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선이 굵고 튼튼했음을 새삼 확인했다. 민족, 세계평화, 정의, 의리 등의 대의(大義)를 소중히 여기며 거기에 목숨도 걸 줄 알았던 사람들의 세대는 나라 안팎을 막론하고 진작 그 맥이 끊겼는지도 모른다. 커다랗고 옹골찬 그들의 생각과 실천은, 이른바 포스트모던의 시대라는 오늘날엔 흑백영화처럼 촌스럽게 비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주’처럼 여전히 감동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윤동주 시 세계 전반에 ‘부끄러움’이란 주제가 얼마나 깊고 넓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일경(日警)에 검거되기 직전(1941~1942) 주로 쓰인 마지막 시편들에는 놀랄 정도로 부끄러움에 관한 표현이 많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고 노래한 유명한 ‘서시’ 말고도, 예컨대 이런 구절들이 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길’)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쓰여진 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같은 하느님 현존 앞에 벌거벗고 서 본 적이 있는 이에게 이 ‘부끄러움’은 익숙한 느낌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나, 그리고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와 있는 그대로의 나 사이에는 늘 어떤 간격이 있다. 이 간격의 공간은 비겁함, 나약함, 자기기만이나 합리화, 어둠, 혹은 (이 모두를 총칭하여) ‘죄’라는 내용물로 채워지리라. ‘부끄러움’은 자기 안에 있는 이런 것들에 대한 사람의 일차적 반응 중 하나일 터.
그러나 자기 내면의 ‘죄’에 우리는 다른 반응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사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얼굴로 반응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예컨대 극히 수상쩍은 일로 청문회 같은 곳에 불려온 인사들의 입에서 이 시구가 얼마나 자주 인용되던가. 원작과는 정 반대 의미로! 그러나 그런 ‘평화로운’ 얼굴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맑고 투명한 영혼이 아니다. 탁하고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인격이다. 윤동주처럼 “부끄러워서 괴롭다”고 토로하는 정직한 얼굴에서라야 우리는 깨끗하고 향기로운 ‘인간’을 보고, 바로 거기서 세상의 희망도 본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한 대담에서 “인간 호르헤 베르골리오는 누구입니까?”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한참 생각 끝에 머뭇거리며 그가 내놓은 답은 “나는 죄인입니다”였다.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이미 은총이라고도 하셨다. 교종의 이런 말씀에 화답이라도 하듯, ‘동주’에서 시인 정지용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부끄러움의 영성’, 그 압권은 아마도 박완서 선생의 한 단편에 나오는 다음 문장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나 싶다.
“그 느낌(부끄러움)은 고통스럽게 왔다. 전신이 마비됐던 환자가 어떤 신비한 자극에 의해 감각이 되돌아오는 일이 있다면, 필시 이렇게 고통스럽게 돌아오리라. 그리고 이렇게 환희롭게. 나는 내 부끄러움의 통증을 감수했고, 자랑을 느꼈다. 나는 마치 내 내부에 불이 켜진 듯이 온몸이 붉게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중에서). 이쯤 되면 ‘부끄러움’이야말로 자비의 희년에 정녕 필수적인 ‘신공’(神功)이 아닌가 한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연학 신부(파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