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바티칸에서는 전체 교회에 ‘봉헌의 해’를 선포했고 그에 맞춰 각 지역교회와 수도회는 작은 움직임들을 보였다. 봉헌의 해를 마감하며 수도회별로는 이런 저런 결론들을 내놓고 매듭을 지었고, 올 2월에는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봉헌생활의 해를 맞아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와 공동 진행한 ‘한국 여성 수도자들의 현실과 미래 비전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국 여자 수도회 봉헌생활 현실과 쇄신 방향’ 심포지엄도 개최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녀들은 한국교회에서 수녀들이 끼친 긍정적 영향으로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통해 교회를 풍요롭게 한다”는 점을 꼽았다. 부정적 영향으로는 성직자 중심의 교회문화에 일조, 권위적인 모습으로 평신도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지적했다. 이런 심포지엄 내용을 깊이 보며 들었던 생각은 현대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수도자 정체성은 어제 오늘 논의되어 온 것이 아니라 각 수도회 자체의 여러 설문조사와 한동안 열렸던 교구의 시노드 주제로, 또한 개인 연구 논문이나 세미나 등에서 다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 주제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한국교회 안팎의 변화와 거기에 따른 수도자 정체성이나 역할에 대한 새 시대의 요구나 성찰 때문인 것 같다. 솔직히 활동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본인도 교회 안에서, 교우들의 변화 속에서, 사회가 기대하는 수도자상 안에서 본인이 수련소에서 배워왔던 것과는 다른 요구들에 늘 도전을 받곤 하였다.
예전에는 본당 수녀들이 본당에서 미사 준비와 성가 반주, 레지오 훈화와 예비자 교리, 병자 방문과 기도 생활 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좋은 수녀님’이 될 수 있었고, 사회복지 기관에서의 수도자들은 힘든 이웃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으로도 충분히 사회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 안팎에서 수도자에 대한 새로운 많은 기대가 있다. 한국 천주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는 본당 사도직 안에서의 수도자 역할은 어느 교구, 본당 할 것 없이 비슷한 것이었기에 각 수도회의 고유한 카리스마는 생각할 수도 없었고 거의 동일한 역할로 수도복만 다른 모습이었다. 수도자 존재가 한국교회에 미친 긍정적인 면도 많았을 것이고 한국교회의 성장에 거름 역할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모든 수도회가 봉착한 성소 감소 현상 앞에서 새로운 사도직이나 역할 변화의 요구에 맞서 그것을 채워 줄 수 있다는 희망보다는 수도자가 격감하게 될 한국교회 내에서의 새로운 대책들이 더 시급한 듯 보인다.
성소의 감소는, 물론 수도자들의 투신 부족이나 영성의 모범과 겸손 등이 부족한 우리들 탓도 있겠지만 가정에서의 자녀 감소와 기타 여러 원인들이 겹친 사회적 변동을 거스를 수 없는 문제라 여긴다. 역사가 오래된 중·대형 수도회들은 베이비붐 시대 태어난 세대가 대거 입회했던 중년 수녀들의 노령화에 맞서 자기들이 처한 문제 해결만으로도 벅차 보인다.
이런 시점에서, 본당에서 수도자들을 언제까지 볼 수 있게 될까? 그리 길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평신도의 지속적이며 깊이 있는 양성일 것이다. 평신도 양성에 관한 문제 또한 쉼 없이 교회에서 대두되어 왔다. 하지만 아직은 뚜렷한 새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신학교, 수도회에서 크고 작은 성소주일 행사를 열었고, 모든 강론대에서 부르심과 응답에 대한 강론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소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평신도들이 더 다양한 분야에서 진정한 사목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초대 교회나 초기 한국 천주교회에서 보여 주었던 신앙 공동체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평신도의 성소도 중요하다. 그리고 수도자들은 그들을 양성하는 일에 온 힘을 쏟으면 더 좋겠다. 성소주일을 보내며 사제, 수도자 성소 문제보다도 나에게는 평신도 양성 문제가 훨씬 크게 다가온 해였다.